'에릭 호퍼'의 '길 위의 철학자' 는 그의 에세이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는 떠돌이 노동자에서 사금 채취공, 부두노동자 등의 노동을 하며,사색하고 철학한 그야말로 '길 위의 철학자'로서의 삶을 산 인물이다.
돈이 떨어질 때까지 '독서' 하며 '사색하고, 또다시 돈을 벌고 공부했던 경험들이 축적되어 글로 흘러나와 그는 철학자라는 호칭을 갖게 되었다.
# 1
'빅터 프랭클'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죽음의 수용소에서Mens' Serach for Meaning' 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질 때 인간은 자살을 꿈꾼다고 했다.
에릭 호퍼는 '돈이 떨어지면 다시 죽을 때까지 매일 일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피곤하게 했다. 내가 금년 말에 죽건 10년 뒤에 죽건 무슨 상관이가?' 란
생각을 하며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 위대한 철학자는 자살 시도마저도 즉흥적으로 하지 않는다.
브래태니커 백과사전을 연구하여, 신속하고 고통이 적게 죽을 수 있는 '수산염'을 알게 되고 실행에 옮기지만, 결국은 실패한다.
그리고 그는 다시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삶의 목적을 찾는다.
"나는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길로 나서야만 한다. 도시마다 낯설고 새로울 것이다. 도시마다 자기 도시가 최고라며 나에게 기회를
잡으라고 할 것이다. 나는 그 기회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것이며,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자살을 감행하지 않았지만,
그 일요일에 노동자는 죽고 방랑자가 태어났다.
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목적이다. 에릭 호퍼는 방랑자로서의 삶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자살을 실행하지 않는다.
#2
그는 '종교적 몰입의 근원은 자아에,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자아의 거부에 있다'는 말을 했다.
구약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의 말을 되내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말은 문장으로서 옳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된 자로서 '자기 부인'은 필수적이다. '나'를 버리고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현세의 내가 져야함은 신자의 의무이다.
기독교의 '자기 부인'과 에릭 호퍼의 '자아의 거부'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것 같지만, 그 단어에 예수님이 들어오면 그 원인과 결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나는 자아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창조주께 내 자아를 맡긴 것이다. 그 창조주가 참이고 이 세상을 만드셨고,전지전능하신 분이고 게다가 피조
물인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렇지 않을 까닭이 어디있겠느냐? 에릭 호퍼가 '그리스도인들이 자아에 탐닉하다 그 스스로에게 희망을 발
견하지 못하므로, 결국 자아를 거부하고 그 자리에 신을 갖다 놓았다'는 의미로 말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게으름이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신에게 전가할 수
있는 죄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지식인들이라면 인간의 놀라운 과학적 성취와 발전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또한, 최근의 '루시' 나 '인터스텔
라' 같은 영화처럼 결국 인간의 발전이 '신의 영역'까지 도달할 거라는 희망마저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타락'을 전제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자아를 '거부' 한다는 말의 뉘앙스는 다소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그리스도인로서는 '타락한
내 자아를 거부하는 것'은 신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타락한 인간의 발전이란 과연 어디가 끝일까? 나는 부정적이다.
#3
특이한 것에 직면할 때마다 나는 어딘가에 숨은 비밀이 있으며 그걸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을 몸으로 살며, 사색한 에릭 호퍼답다. 그는 주변의 노동자들에게 사람과 세상을 읽었다.
당연한 일상과 사람들 속에서 질문을 던지며 사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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