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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박영선]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열심

저자
박영선 지음
출판사
새순출판사 | 1992-03-0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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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내가 이 꼴인데도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하실 것인가?내가 이 꼴로 예수 믿는다는 이야기를 남에게 해도 좋단 말인가? 이모든 질문의 뒤에 있는 가장 큰 불신앙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축복은 받을 만한 사람이 받는 법이다' 라는 인간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좌절하시려면 아예 교만하십시오. 좌절하는 것은 정말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왜 없습니까? 구원 자체가 내가 요구하거나 협의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내가 믿었기 때문에 얻어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하란까지 밀어내셨고 하란에서 가나안까지 밀어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는 그 일을 경험합니다. 실제로 자기 아비 집을 떠나 하란에 들어왔고 가나안에 들어옵니다. 그런다고 해서 그것이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가르쳐도 모르니까 끌고 밀고 해서 드디어 힘들게 가나안까지 끌고 오시고야 말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근거가 불신앙으로 출발한 아브라함이어야만 여러분과 제가 믿는 이 구원이 복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 바리새인의 모든 신앙의 근거는 세리와 같이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한번도 합의하거나 동조한 적이 없는 길이 신앙의 길입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우리가 한 일은 거부요,반항이요, 미련한 짓이요, 아우성과 헛소리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들 뿐일것입니다.


믿음은 자신이 자신을 설득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그렇게 잘 씁니다. "믿습니다.믿습니다" 톤을 높히고 박자를 맞춰서 '믿는다' 껑충껑충뛰면 마음 속에 믿음을 의지하는 강한 신앙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몽롱한 상태가 됩니다. 그것을 가르켜서 '자기최면을 건다'고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설득하는 작업' 입니다.


여기가 어디쯤 될까요?가나안아 막 들어왔을 겁니다. 가나안에 막 들어와서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결국 여러분을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이 되는 자리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요 하나님의 설득입니다.


기근에 쫓겨 애굽까지 갔던 자가 말입니다. 애굽에서 배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단하신 분이구나. 어쨌든 바로보다 세구나' 이걸 배우고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란생활과 애굽생활을 허락하십니다. 가야 되지 않을 곳을 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틀림없이 간섭하고 계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러나 그 수준에 이르지 않은 사람에게 심지도 않고 거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되지않은 것을 미리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여러분에게 이삭까지 내놓으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것을 여러분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시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갈대아 우르에서 우리의 목을 휘어잡고 "네 아들 내놔라" 이런 식으로 나타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희망에 많은 전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솔직히 인정하십시오. 이것이 겸손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이삭을 요구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아브라함의 생애 맨마지막에 요구됩니다. 


말로 해서 안되면 드디어 손을 댈 수 밖에 없습니다. 손을 어지간히 대서도 안되면 더 심하게 댈 수 밖에 없습니다. 


깨우치십시오. 나의 애굽 생활을 가능한한 짧게 정리를 하십시오. 여러분의 신앙 생활 속에 하나님이 간섭하시지 않는 신앙의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빨리 깨닫느냐가 관건일 따름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정답 이상의 것이요, 아는 것 이상의 것이요, 알아도 아는 것에다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매달리고 전적으로 거기에다 나를 맡기고 싶은 지경에까지 들어간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세레요한이 그들 앞에 나온 사람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꾸짖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로 회개하여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나님이 능히 이 둘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리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걸로 하나님의 자녀를 만든 다음에 무엇 때문에 취소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들여 논 다음에 무엇 때문에 다시 차버리겠습니까? 그만두시려면 그전에 관두시지 않았겠습니까? 시작하셔서 끌어 오셨는데 이제 여러분이 말을 안듣는다고 관두시겠습니까?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고 코에 뭘 꿰어서라도 여러분을 끌고 가시고야 말 것입니다.



야곱

무슨 행한 일이 없을 때에, 태어나기도 전에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되는 부르심이 우리를 그의 자녀로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의 출생이 있었고 거듭남이 있었고 지금 인도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이제 얼마나 얻어 맞으면서 가느냐, 칭찬을 받으면서 가느냐 이것 밖에 없습니다. 거기 가긴 갈 것입니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시고는 이제 그 땅을 소유할 능력 뿐만 아니라 그 수준의 사람으로 야곱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란으로 유학을 보내는 겁니다. 그러나 가서 합격하면 이 땅을 주고 합격하지 않으면 안주겠다는 뜻입니다.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훈련과 시험중 어느 것이 어렵습니까? 훈련이 어렵습니다. 시험은 합격과 불합격이 있어서 어려워 보입니다만 그것은 합격하면 합격이고 불합격하면 불합격이기 때문에 오히려 쉽습니다. 훈련은 목표한 것이 될때까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내가 너를 이 땅에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시면 겁나는 줄 아셔야 됩니다.흐지부지가 없습니다. 시키고야 맙니다. 되도록 하기까지는 잠 안 재우실 것이고 휴가도 없고, 외출, 외박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뭘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신앙 고백을 줄줄 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 수준에 서 있고 다 되었다고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악질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것 보다도 더 지독합니다. 그것은 살아오신 분들이 잘 압니다.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 같은 것을 삼십번쯤 하셔야 다음에는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 같다'가 아니라 '또 그럴것이다' 라고 알게 되십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시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 죽었다고 복창하셔야 됩니다. 그가 뿌리신 자녀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냥 절대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가장 큰 증거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피흘리게 하신 일이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쯤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 앞에 이 자리에 이르도록 안하실 것 같습니까?


요셉


그 훈련에 관한 이야기가 요셉입니다."너희는 너희의 잘못에 관한 지적이아니라 하나님이 만들고자 하는 작품을 위하여 훈련받는 자리에 초대받는다. 요셉은 어떻게 초대받았느냐?" 이렇게 받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그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훈련하시느가 하면 막다른 골목에 쳐넣어서 할 수 없이 훈련받게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냥 받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요셉은 한 두번 터진 게 아니라 악도 쓰고 10년 이상을 당할 수 없는 길을 돌아서 드디어 그의 혼이 하나님 손에 의하여 완전히 붙잡혀 버리는 사람이 됩니다.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