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9년도에 샀던 이 문고판이 좋다.
휴대도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하고 책을 보기도 편하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읽을 때마다 매번 놀라곤 한다.
마음의 흐름을 이런 식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나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고 있던 마음의 문제들과 고민들이 수면 위로 한번 더 올라왔다.
길게 올라와 자를 때가 된 잡초들은 얼른 쳐내야 속이 편하겠지.
밑줄긋기
성인이 되어 회심한 이들 중에는 잠시 원수의 진영에 머물다가 다시 돌아와 우리와 함께 지내는 사람이 수백 명도 넘으니까. 네 환자의 몸에 배어 있는 습관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직은 우리에게 전적으로 유리하지.
인간이 원수(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싶은 갈망을 잃었더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원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 같고 왜 그가 자기를 버렸는지 계속 의문이 생기는데도 여전히 순종한다면, 그때보다 더 우리의 대의가 위협받을 때는 없다.
여하튼 행동으로 옮기는 것만 아니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두거라. 상상과 감정이 아무리 경건해도 의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해로울 게 없다. 어떤 인간이 말했듯이,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 습관은 반복할수록 약화되는 법이거든.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 수도 없게 되지.
원수(하나님)의 이상형은 하루종일 후손의 행복을 위해 일한 다음(그 일이 자기 소명이라면), 그 일에 관한 생각을 깨끗이 털고 결과를 하늘에 맡긴 채 그 순간에 필요한 인내와 감사의 마음으로 즉시 복귀하는 인간이다.
인간들은 단순히 불행이 닥쳤다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 불행이 권리의 침해로 느껴질 때 분노한다.
초창기에 회심한 인간들은 단 하나의 역사적 사실(부활)과 단 하나의 신학적 교리(구속)만으로 회심했다. 그리고 그 구속의 교리라는 건 자기가 이미 저지른 죄를 자각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지. '복음서'는 나중에 생긴 것으로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양육하기 위해 쓰여진 게야.
혹시 환자가 양심의 저항에 부딪치거든 혼동을 일으켜 버리거라. 자기가 증오심을 품는 건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자들과 아이들을 위해서이며, 원수를 용서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도 자기의 개인적 원수에 해당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원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하라구.
환자가 긴장된 상태에서 그 아가씨를 만나려 들지 모르겠구나. 혹시라도 만나거든, 피로라는 게 어느 정도까지는 여자를 수다스럽게 만드는 반면 남자의 말수는 오히려 줄인다는 사실을 십분 활용하거라. 아무리 애인 사이라 해도 이런 문제로 얼마든지 은근한 분노가 쌓일 수 있지.
그런데 막상 신들을 만나는 순간, 자기가 처음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기 혼자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삶의 시간마다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해주었는지도 깨닫게 되었단 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일일이 "당신은 누구시죠?" 라고 묻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이었군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거야.
서문 中
가장 큰 악은 카펫이 깔려 있으며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따뜻하고 깔끔한 사무실에서, 흰 셔츠를 차려 입고 손톱과 수염을 말쑥하게 깎은,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는 점잖은 사람들이 고안하고 명령하는 것이다.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 (0) | 2013.06.16 |
---|---|
[C.S.루이스] 고통의 문제 The Problem of Pain (0) | 2013.06.06 |
[존 스토트] 설교자란 무엇인가 Preacher's Portrait (0) | 2013.06.02 |
[김남국] 사랑한다 독사의 자식들아 (0) | 2013.05.29 |
[이민아] 땅끝의 아이들 (0) | 2013.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