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엘리야의 사명으로 세 명에게 기름을 부을 것을 예언적으로 명하셨다. 그러나 실제로 기름을 부은 사람은 엘리사 한 명 뿐이었다. 하사엘에게 기름 부은 사람은 엘리사였고, 예후에게 기름 부은 사람은 엘리사의 한 제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사명을 주셨지만, 모든 사명이 그의 당대에 그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 사명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그를 데려가셨다. 예수님 앞에 선 모세와 엘리야 모두 사명 가운데 약속을 받았지만, 그 성취를 보지는 못했다.
모세는 요단강 동편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받았지만 그저 바라볼 수만 있었을 뿐, 그의 당대에 그 땅을 밟고 소유하지는 못했다. 아브라함은 그 발로 밝은 땅을 미래 그의 후손의 소유로 하나님께 인정받았지만, 아브라함 자신이 당대에 그 땅을 물리적으로 소유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아내가 죽었을 때 장사할 땅조차 없었기 때문에 헷 족속에게서 막벨라굴과 그에 딸린 밭을 돈을 주고 샀다.
나의 세대에 허락된 분량이 있다. 각자에게 맡겨진 영역에 충실하되 그 선을 넘지 않는 겸손, 하나님은 이 겸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세와 여러 하나님의 사람들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다.
하나님은 주시기 원하지만 미처 받을 준비가 안 된 아브라함을 기다리셨다. 시련과 시험이 지날 때까지 기다리셨다. 이 기다림을 통해서 얻은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장하고 성숙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연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추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하며 살기로 결정하고 나서 처음으로 맞게 되는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기다릴 줄 아는지 보시는 것은 겸손과 순복을 테스트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방법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 심지어 내가 정한 시한을 넘겨가면서 기다려야 할 떄도 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 우리가 원하는 시간보다 늦어진다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잘못된 결정으로 우리를 몰아갈 수 있다. 한님은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한 시간에 맞춰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무엘 없이 스스로 제사하는 죄를 범했다. 기다림은 그 자체가 지극히 의지적인 행위이자 순종이다.
나의 소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묵상하며 그분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응답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 번째 이유가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같이 맏딸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의 문제는, 부모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원하는 것을 말 못하고 있다가 자신이 기대하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마음속에 실망감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실망감을 밖으로 내색하지 않고 있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점차 상처로 남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태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도 그대로 투여되어 나타나기 쉽다.....이런 모습이 신앙 좋은 성숙한 태도로 윤색되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불신과 신앙 사이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으로는 모든 상황을 넘어서 초자연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고 소망하는 믿음을 키울 수 없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믿는 기본적인 믿음과 신뢰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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