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사람과 감정을 바라보는 김훈 작가님의 시선은 건조했다.
사랑도, 죽음도, 치열한 인생살이의 무게마저도 김훈 작가님은 담담히 풀어낸다.
숲의 꽃과 나무를 표현하는 디테일과 심연에서 끌어온 듯한 낯설지만 왠지 멋있는 언어들의 조합은 묘하게 중독성 있다.
김훈 작가님의 글은 나에게 늘 그렇게 다가온다.
너무 차갑지만 왠지 멋있고 중독성 있는
[밑줄 긋기]
- 할아버지의 죽음은 가벼웠고, 날이 저물어서 밤이 오는 것 같았다.
- 어머니는 자신의 상처로 칼을 만들어서 딸을 찌르려는 것일까. 이 밤중에. 핸드폰으로.
-오십 년 전에 죽은, 소속을 알 수 없는 병사의 상추쌈이 내 입맛 속으로 살아돌아왔다. 살아서 상추쌈을 먹는 일이 문득
눈물겹게 느껴졌다.
- 군인들의 밥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았다. 그 밥은 음식으로서의 표정이 없었고, 재료의 맛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 세 식구가 마주 앉으니까, 포유류의 혈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 넌, 니 아버지가 나왔는데 집에서 하룻밤 자지도 않니.
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는 나를 붙잡지는 않앗다. 어머니의 말은 아버지가 나왔으니까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는 권유가 아니라, 아버지가 나와도 너는 가는구나, 라는 서술이었다.
- 내가 아버지 생각을 끄집어낸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갑자기 내 마음속으로 쳐들어왔다. 마음의 일은 난데없다.
마음의 일은 정처없어서, 마음 안에서는 이 마음이 저 마음을 찌른다.
- 사실 나는 외롭다는 감정이나 상태를 잘 이해하거나 체득하지 못하는 편이다. '외롭다'는 상태는,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외롭다, 라고 말하는 것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말로 나는 알고 있었다. '존재한다'는 뜻 이외에 '외롭다'라고 말하는 글이나 노랫가락이 어떠한 상태를 말하고 있으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 것인지를 사실 나는 정확히 체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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