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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산드라 퀘린] 욥의 기도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강원도 양구의 GOP에서 지옥같던 추위를 간신히 견디고 인간이 살만한 날씨로 바뀌었을때 쯤 소초로 배달이 왔었던 책이였다.

큰누님이 '동생의 고난이 얼마나 심할까'..라는 생각을 했던 거였는지 고난의 대명사 "욥"과 관련된 책을 보내줬었다.  

 

군대에서 읽던 책이여서 그런지 옆면에 이름까지 써있다.(아마 예비역이라면 이해할거다..숟가락에도 이름을 쓰는 곳이니까)

이 오랜 추억의 책을 10여년 만에 다시 읽어보았다.

 

고난과 고통의 상황에서 믿음을 온전히 유지함이란 쉽지 않을 것이다.

믿음을 가진다고 상황이 바로 변한다고 생각치 않는다.

믿음이란,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변하는 것인데

많은 교회에서 지금도 믿으면 부자가 되고, 사업도 번창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단순한 분이셨더라면 나도 참 좋았을 것 같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라면

부활하신 예수님도 나사렛에서 제자들을 만날게 아니라 예루살렘 한 복판에서 부활을 증명하며 하늘을 날기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퍼레이드도 하시고 하늘로 뿅~하고 승천하셨겠지.

그럼 모두가 그 부활의 증인이 될 것이며, 제자들의 남은 사역은 고난의 길이 아니라 사회의 셀러브리티로 어썸한 인생을 사셨겠지.

 

욥의 그 어려운 상황은 변하지 않지만,

믿음으로 그의 태도를 돌려 회복된다.

 

말은 쉽다.

행동이 늘 어렵지.

 

내가 늘 얘기하는 바로 그 것.

하나님을 100퍼센트 신뢰한다면, 세상 것에 주눅들 일도 힘들어 할 것도 없다.

이 짧은 여행이 끝나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텐데, 여긴 여행지인데.

필리핀 세부 시티의 한 복판에서 사람들에 치이고, 매연을 뒤집어 쓰고, 방금 아얄라몰에서 산 쪼리가 끊어져도 행복할 수 있는 건

어디보다 편한 나의 홈스윗홈에 곧 돌아간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내 숙소에는 나의 여권과 리턴 항공권이 있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늘.

행동이 어렵지.

 


 

쓰레기 더미 위에 꽃만 잔뜩 심어놓았다고 정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주 쉽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그런 편한 길을 택하도록 가르친다. 당신의 영혼 속에 무턱대고 사랑이라는 허울만 심어놓고 아름답게 위장하게 하려는 것은 사단의 계략이다.


얼마나 많은 칭찬들이 당신의 "위장된 잔디밭"때문에 남발되고 있는가? 위장된 회복, 위장된 하나님을 향한 신앙, 여전히 노예 상태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자유인인 것처럼 위장된 모습에 대해서 말이다.


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진실한 기도가 무엇인지 터득한 후,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대신 자기 친구들과 원수들의 문제를 부여안았다.


소유욕을 자제할 수 있는 훌륭한 성품을 지닐 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것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을 괜스레 주기적으로 빼앗아 가시는 분도, 그냥 심심해서 욥을 시험하듯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도 아니시다. 대신 그분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아시며, 어떻게 해야 우리를 그 곳에 데려다 놓을지 꿰뚫고 계시는 분이시다.


"이는 여호와게서 요셉가 함께 하심이라"(창39:23)라고 전한다. 바로 요셉이 곤경에 빠져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구, 내게 주신 그 비전은 모두 어디로 간 것입니까?"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하나님께서 거기 계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그 분은 항상 거기 계셧다.


솔직히 말해, 나는 병에서 치료되었을 때보다 오히려 낫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 바람이 거절당했을 때 영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예수님의 문제 해결 방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위대하고 완벽하다.


메튜 헨리는 "의의의 고난을 모두 심각한 죄들에 대한 형벌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각별한 은혜를 주시기 위한 시련 일 수도 있다. 거룩한 고난은 영적 성장을 가져온다"라고 하였다.


"은을 정제하는 동안 자리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하나요?" 
그가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리에 꼭 붙어서 풀무를 계속 주시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정제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초과되면 은은 그야말로 쓸모가 없게 되니까요." 
그 순간 그 여인은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라는 말씀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말씀인지 깨달았다.


예레미아는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온 그 다음 말은 실로 아름답다. 그는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9)"라고 고백하였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난 피할 수가 없다. 내가 받은 소명이 골수에 사무쳤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자니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다.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른척할 수 없다.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든 상관치 않겠다. 이렇게 속이 타니 그 일을 안 하고는 못 견디겠다." 
이것이 바로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회복될 수 있는 길이다. 서둘러라.


이사야 42장 3절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그 넘치는 지각으로 무슨 일이든지 우리로 능히 강담케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르써가 아니라 그분의 대에 그분의 뜻으로 말이다. 만일 곤고함이 심히 크다면 기억하라. 거기에는 또한 하나님의 은혜도 극히 크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