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다.
사랑하면 관심을 갖게 된다. 지금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가정해보자. 난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당신이 점심에 먹은 음식은 무엇인지, 비 내린 오늘 당신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도 궁금할 것이다. 어느 날 만난 당신의 손에 작은 얼룩이라도 있다면 난 호들갑을 떨며 그 이유를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그 호들갑은 단순한 호들갑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진실한 호들갑일 거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은 진정 사랑이다.
나는 사랑을 잘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삶을 나누는 사랑은 해 본적도 없고 받아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내 인생의 앨범을 펼쳐 이리저리 뒤적여 보아도 사랑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물론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솔직히 나는 ‘애정결핍’을 가지고 있다. 이 애정결핍도 ADHD나 조울증처럼 일종의 정신질환인 것일까? 난 의사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다. 찾아보기도 귀찮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난 애정결핍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이유로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의 사랑도 이 질환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진 못할 것 같다. 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본 적이 있는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특별히 특이한 사람도 아니니까 말이다.
어느 날 나의 생일날 가족 중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느 날’이라고 강조 했지만 사실 대부분 그렇다. 생일이라고 특별한 식사를 한다거나 미역국을 먹는다던가 하는 기억은 거의 없다. 내가 굳이 생일을 예로 든 이유는 ‘생일’이라는 단어가 갖는 묘한 기대감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나의 생일을 축하해 준다. 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할 선물을 준비한다. 함께 노래 부르고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기대감이 반영되어 있는 단어가 생일일 것이다. 그러한 생일을 어제와 같은 하루로 보낼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외로운 사람이다.
(역설적으로 난 친구가 늘 많았다. 가족에게서 느끼지 못한 사랑을 외부에서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피상적 관계는 깊은 허기짐을 채울 수가 없다)
평소에 사랑을 많이 받아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외로움은 특별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외로움은 안경과 비슷하다. 늘 쓰고 있지만 세수 할때와 자기 전을 제외하면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가끔은 안경을 낀 채로 세수를 하려다 깜짝 놀랄 때도 있다. 그래서 늘 외롭지만 가끔씩만 '외롭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난 사랑을 모른다. 평생 누구도 날 사랑한다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가끔씩 다가와 사랑한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난 그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차단했다. 나도 날 사랑하지 않는데 네가 날 어떻게 사랑하겠냐? 또한 나는 내 머리속의 저장메모리를 로딩하여 그간 날 사랑한다 말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떠나 간 사람들과의 부정적인 순간들을 꺼내와 회상한다.
이순간 내가 애정결핍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내가 늘 갈구하는 것이 타인의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 말할 때 그건 진짜 사랑하는 것이다. 실제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미 그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난 사랑한다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집착이다. 이런 극단적 감정은 서로를 다치게 한다. 애정 결핍의 폐해다.
‘나는 널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는데 넌 날 요만큼 밖에 사랑하지 않아? 그건 사랑이 아니야. 너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90년대 유행했던 일본 소설들에 나오던 무서운 여자들 같은 감정일 뿐이다.
사랑은 주고받는 공놀이가 아니다.
이렇듯 나는 사랑에 관하여 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꿈꿔오던 사랑을 이미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벅차올랐다. 게다가 그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것이 아니라 내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었고 늘 나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아픔에 눈물 짓고, 나의 기쁨에 함께 미소짓던 순도 100%의 사랑이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왔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사랑에 관한 부정적 편견들도 모조리 깨져버렸다.
사람들의 사랑은 완전할 수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들이 모두 죽었기에 세기의 사랑으로 남았다. 그들이 생존해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들도 우리의 부모들과 다를 바가 없는 아저씨 노미오, 아줌마 이줄리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의 부모님들도 모두 로미오와 줄리엣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랑의 주인공들이었다. 사람들은 완전하지 않기에 그들의 사랑도 완전할 수 없다. 내가 애정결핍과 함께 평생을 살아왔다는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기준이 인간을 초월한 기준이였기에 세상의 어떤 사랑의 전사도 그러한 사랑을 줄 수 없었던 것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애정결핍이라는 정신 질환을 바닥에 던져 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다. 재미를 위한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가 아니다. 시험하고 징계하기 위한 수감자들도 아니다.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고 지금도 그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임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느끼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만 나는 그 사랑을 가슴으로 알게 되었고 내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초월하는 그 사랑 앞에서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나의 상황이 변한 것은 없다. 단지 나의 태도와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렸을 뿐이다.
앞으로도 난 힘들고 억울하고 어려울 것이다. 불합리한 세상과 타락한 우리들을 보며 가슴찢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닐 것이다. 또한 나 역시 그 불합리한 세상과 타락의 한 가운데서 구별되지 못함을 느낄때마다 가슴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나님은 완벽하시기에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시다.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난 강아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날 사랑해주고 날 보면 꼬리치며 기뻐해주는 충만하고 조건 없는 사랑만을 원할 뿐이다. 난 그사랑을 보면 기쁠 것이고 언제나처럼 그 강아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할 것이고, 혹시라도 아프다면 한밤중이라도 끌어 안고 병원으로 달려갈 것이다. 약한 인간도 강아지에게 그러한 사랑을 베푸는데 하물며 완벽하신 분께서 주시는 사랑이란 어떤 것일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 분이 나에게 원하는 태도는 무엇일까? 그 분이 사랑으로 창조한 모든 사람들을 인정하고 사랑하고 아끼며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는 일이겠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내 옆에 그리고 당신 옆에도 있는 그 꼴도 보기 싫은 인간 말종도 놀랍게도 하나님이 사랑으로 창조하셨다.
어찌하랴. 그 인간 말종을 사랑하기는 어려워도 그 인간 말종 역시 사랑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권면해야 하겠지.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빨간약을 선택한 크리스천들은 그래야 하겠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자 내가 갖고 있던 애정결핍의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다.
그의 무한한 위대함을 깨닫게 되면, 나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 밖에 없다.
지금부터의 나의 사랑은 예전의 나의 사랑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나의 외로움을 해소시켜 줄 도구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애정 결핍을 투영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아픔과 상처를 부끄럼 없이 표현할 수 있으며 나 역시 그의 아픔과 상처를 거짓 없이 달래줄 수 있으며
나보다 그의 행복을 더 기도하며 바라고
그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고
나란히 서서 세상 보단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 할 수 있는
연약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완벽한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그런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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