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의 두 패러다임
1. 신비적 패러다임 (시크릿)
2. 윤리적 패러다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제치고 시크릿이 뜨게 된 것은 신비적 패러다임이 윤리적 패러다임을 압도한 현실을 반영, 윤리(근면)영역에서 생존과 신분 상승의 해법이 발견되지 않으니, 신비(믿음)영역으로 비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주어진 해법이다.
- 이 단서를 통해 드러나는 바, 개인의 노력을 통한 현상 유지의 한계와 계급 상승의 불가능을 초래하는 양극화의 심화920대80에서 1대 99로 악화되고 있는)를 우리의 논의에 하나의 준거로 삼아야 한다.
1장 자기계발의 역사
윤리적 자기계발의 기원
- 청교도와 자기개발
- 현세 지향성과 지가계발
윤리적 자기계발의 부흥과 타락
-인격적 자기계발서의 원조, 자조론
-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거인, 프랭클린
- 인격적 자기계발의 구루, 카네기
윤리적 자기계발의 회복과 번형
- 윤리적 자기계발의 개혁자, 스티븐 코비
- 코비식 자기계발의 가부장적 진실
: 코비의 저작의 남성 중심적인 성격은 그의 후속작 "소중한 것을 먼저 해라"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육아와 경력사이에서 고뇌에 빠진 자신의 딸에게 스케줄에 얽매이지 말고, 달력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조언한다. 분명 전작과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조언의 대상이 상심한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 하더라도 그의 조언은 유효할까?
-윤리적 패러다임과 심리적 패러다임의 관계
신비적 자기계발의 배경과 등장
- 청교도 대 유니테리언
: 18세기에 등장한 유니테리언은 오로지 성부의 신성만을 인정하며, 예수의 신성을 거부했다. 이제 예수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모범의 대상이 되었다.....즉 신적 경외 대신에 인간적 존경으로 대하게 된 것이다. ...
: 유니테리언 신학은 예수를 낮춘 만큼 인간을 높인다. 이러한 신학적 낙관과 인간에 대한 확신은 청겨도에 연연한 윤리적 자기계발과 구별되는, 신비적 자기계발의 원류로서 값을 하는 부분이다.
-유니테리언에서 초절주의로
: 창시자-랄프 왈도 에머슨, 널리 알린 사람- 헨리 데이비드 소로 (미국 유니테리언의 중심지 하버드 출신
: 배경 - 독일의 관념론, 인도이 힌두교. 스베덴보리의 신비주의, 논어,플라톤,퀘이커교 등이 섞인 사상의 용광로가 초절주의
: 윤리적 자기계발의 시조 - 프랭클리
신비적 자기계발의 시조 - 에머슨
: 초절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칸트와 연결되는 개념이다. 더욱이 자아가 우주 전체와 맥락과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아닌가. 초절주의자는 명확하게 칸트와 헤겔의 후예이다.
: 소로는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을 반대하기에 정부에서 요구하는 인두세 납부를 거부했다. 그로 인한 수감 경험이 그로 하여금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정부란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다. 사실 수감된 시간이 단 하루였음에도 '시민불복종'은 그의 사후에 톨스토이와 간디, 그리고 마틴 루터 킹을 거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만일 그가 장기복역했다면, 지금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차지하는 자리를 소로의 '시민 불복종'이 대체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고작 하룻밤 수감된 것은 마르크스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소로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는 사실 그의 어머니의 거처에서 멀지 않았으며, 매일 어머니를 찾아갔다.(이 점을 흥미롭게 주목한 심리학자도 있다.) 그가 전원 속에 온전히 고립되어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는 결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다. 초절주의에서 읽어내야 하는 것은 금욕주의가 아니라 낙관주의이다. 그리고 이 낙관주의의 근거에는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존재인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 소로의 문명 비판적 면모로 인해 초절주의의 이러한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 신사고 운동의 시작
: 신사고 운동의 창시자는 독학을 통해 나름의 신학을 개진한 피니어스 파커스트 큄비 이다. 그의 가르침은 당시 신경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큰 효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운동에서 후대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따로 있다. 1863년에 메리 베이커 에디가 그를 찾아 왔다. 그를 통해 치유를 경험한 그녀는 큄비의 사후에 자신을 신사고의 창안자로 내세우며 크리스천사이언스 교파를 창설한다. 이제 신사고 운동은 에디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게 된 것이다.
에디는 크리스천사이언스를 통해 부와 명성을 획득했따. 그녀에게 있어서 존재하는 것은 정신일 뿐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질병과 가난은 존재할 수 없으며, 찰나적으로 나타나는 미망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미국의 종교 시장을 두고 칼빈주의와 경쟁하게 되었고,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신비적 자기계발의 부흥과 타락
- 신비적 자기계발의 수호성인, 와틀스
:신사고에는 여러 단체와 여러 사조가 뒤범벅되어 있다. 상황이 그러하니 정돈된 철학을 말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지적 사조라기 보다 치유 운동이었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그러나 적어도 치유의 잠재력으로서 마음의 능력을 신뢰한다는 것에 공통된 초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와틀스는 자신의 부자학을 일종의 과학으로 생각했다. 일정한 원인은 일정한 결과를 낳는 법이다. 실험실에서 일정한 조건하에 실험을 반복하면, 결과가 대체로 일치할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부자가 되는 것도 그 인과성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가 내세운 방법은 신사고 운동을 따라 사고에서 현실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는 오늘 날 '시크릿'이나 '리얼리티 트랜서핑'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있는 심상화라고 하는 테크닉을 널리 확산시킨 인물이다.
- 신비적 자기계발의 천사박사, 나폴레온 힐
: 대중은 신비적 자기계발을 요구한다. 일종의 도피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윤리적 자기 계발이 동기부여의 기능에 더 무게가 실린다면, 신비적 자기계빨은 진통제로서의 기능에 방점이 찍힌다.
- 신비적 자기계발 교회
: 상당수 목사들이 교회 강단에서 설교의 형식을 통해 신비적 자기계발 교시를 전파했다.
(부의 법칙, 캐서린 폰더 목사 / 적극적 사고방식, 노먼 빈센트)
: 적어도 자기계발은 진지한 문제의식과 함께 출발했다. 그러나 자기계발 사조가 역사 속에서 진행되면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휘발되고 말았다. 이는 경제공황이나 이에 준하는 위기로 말미암은 자기계발 사조의 부흥, 즉 성장과 이에 수반하는 타락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시크릿'에 모든 걸 뒤집어씌우기 전에 그 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사회 자체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시크릿'은 2007년, 2008년에 걸쳐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빛난다. 그런데 '시크릿'의 대박은 전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윤리적 자기계발의 패러다임으로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암울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이 사회가 1%를 위해 99%의 희생을 요구하는 시스템을 작동하고 있으니 뭐라도 도피 수단을 강구하고 싶어 하게 마련이다. 신비적 자기계발의 가장 퇴락한 양태는 곧 우리 사회의 퇴락한 얼굴에 다름 아니다.
미국적 종교로서의 자기계발
자기계발이 거대한 교육 사업인 동시에 더 나아가 일종의 유사종교로 전환된 것이다.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과학과 달리 종교는 강력한 믿음을 기대한다. 그리고 자기계발이 교육사업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포지셔닝 한다면 과학과 종교 사이에 자리매길 수밖에 없다. 문화과학은 자연과학과 종교의 사이에 자리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의 문화(담론)로서의 자기계발이 사실상 종교로 격상된 상황이다.
- 자기계발의 양태 : 사업에서 종교로
: 본질적으로 따져보면 자기계발의 세계화는 미국적 가치관의 세계적 확산에 다름 아니다.
: 제대로 살펴 본다면 자기계발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은 개인의 발명 혹은 (재)발견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대체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자기 계발의 '타락'이다. 처음의 진지한 문제의식과 지적 성찰은 시간이 갈수록 퇴조하고, 실로 진부한 표현이지만,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고 말았다는 듯이다. 이는 미국의 정황에 따른 것이다.
- 자기계발과 사회 변동 : 정상사회에서 위기사회까지
:자기계발은 어디까지나 사회변동의 정황에 연동되어 있다. 미국사회에 기대가 폭증하는 정상사회일 때에는 윤리적 패러다임이 지배적이었고, 불안으로 점철되는 위기사회일 때에는 신비적 패러다임이 주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항상 윤리적 패러다임에서 신비적 패러다임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 분기점은 대공황, 혹은 이에 준하는 개인의 노력을 능가하는 위기 상황이다.
: 안타까운 것은 이제 장기 침체의 예정된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이 항존하고, 희망이 거세된 현실이 곧 우리의 삶이다. 이제는 잠입 르포의 장인이라고 불러드려야 할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노동의 배신'을 통해 하층계급의 우울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그날 수입으로 그날 생존하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미래를 위한 저축이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더욱 암담해졌다. 그녀는 '희망의 배신'을 통해 중상류층에게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신랄하게 조명했다. 이제 최상류층을 제외한 모두에게 위기의 상태와 불안의 정서가 정상으로 규정되고 수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더욱더 자기계발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ㄷ.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이 지향하는 주체화 기능은 철저하게 현실 순응적이다.
- 자기계발의 주체화
: 자기계발이 지향하는 것은 목표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목표의 성공이 곧 자기인 것이다. 이는 사회의 현실에서 눈을 돌려 개인의 이상에 착념하게 만든다. 따라서 자기계발의 성공을 위한 전제는 다름 아닌 자기를 설득하는 것이다. 구조에서 개인으로 초점을 돌리게 만들고, 개인에게 무한 책임을 지운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하게 자기 세뇌다. 이러한 세뇌의 핵심에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놓여있다. 만일 정상사회라면 개인의 성실한 노력에 기대를 걸게 만들 것이고, 위기사회라면 개인의 긍정적 공상에 기대게 하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양자가 긍정하는 인간의 능력의 본질은 다르지만, 핵심은 개인의 능력에 대한 긍정이다.
미국적인, 동시에 한국적인 우리의 자기계발
한국은 미국을 욕망하며, 나아가 그들의 욕망을 욕망한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비록 이 땅에 미국의 정신과 가치를 맹목적으로 이식해놓았다고는 하나 한국은 그 나름의 역사와 고유한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 토양이다. 그로 인해 우리의 자기계발은 미국과 비슷한 동시에 미국과 다르다
- 신비적 자기계발과 한국의 무속적 기독교
: IMF 사태 이후 진행된 양극화로 말미암은 어려운 국내 환경은 분명 자기계빨의 무게 중심을 윤리적 흐름에서 신비적 흐름으로 옮겨가게 만들었다. 그 전조는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 윤리적 자기게발의 요람으로서의 한국교회
:무속 신앙과 기독교가 만난 것이 한국교회의 특수성이라고 한다면, 교회가 현세에 붙박이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 즉 반공주의는 아마 한국교회를 넘어서 한국사회의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1970~80년대에 급속히 성장했떤, 이른바 강북형 대형교회는 대체로 이북 출신 기독교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공산당의 위협속에서 땅과 재산을 버려두고 남하한 그들에게 있어 공산주의는 현실적 두려움이고, 재산 축재는 현실적 방비책이었다. 즉 두려움의 대상이 초월적인 것에서 가시적인 것으로 전환되게 만든 그들의 현세 지향성의 내용은 반공주의에 다름 아니다.
: 신비적 자기계발은 오랫동안 주로 교회와 다단계 안에서 소비된 반면 윤리적 자기계발은 일찍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하자면, 이지성이 등장하기 전에 공병호가 먼저 주목을 받았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날라리 기독교 신자'를 자처하는 이지성은 기독교 신앙과 신비적 자기계발을 적극적으로 연결시킨다. 한편 공병호를 포하한 윤리적 자기계발의 이데올로그들은 스스로의 성실한 노력에 대한 보상을 확신한다. 다시 말해서 한강의 기적이 21세기에도 재현 가능하다고 확신하며,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소신을 견지한다.
2장 자기계발의 담론
자기계발과 심리학:긍정 강박과 역할 모델
: 자기계발은 의지에 기초하는 윤리적 흐름과 사고에 토대하는 신비적 흐름으로 대별된다. 그리고 여기에 윤리적 자기계발의 변종으로 정서에 주목하는 심리적 흐름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작금의 윤리적 자기계발 자체가 의징서 정서로 초점을 바꾸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외면(행동)의 변화에서 내면으로 들어가는 윤리적 흐름과 내면(정서)의 변화에서 외면으로 나아가는 심리적 흐름은 결코 다른 흐름이 아니다. 결국 변화의 주체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성에 초점을 맞춘 신비적 자기계발에 대한 대응이며, 나아가 과격한 자기계발 경쟁으로 말미암은 부담으로 인한 일종의 진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자기계발의 심리학적 전회
:행동과 습관의 교정을 중시하는 기존의 윤리적 자기계발에서 내면의 치유와 성숙을 지향하는 심리적 자기계발로 궤도가 수정된 것이다.
- 긍정심리학과 행복 강박
: 긍정심리학은 나쁜가?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학문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시도가 문제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 문제가 된다. 긍정심리학은 행복에 대한 지나친 강박을 조장하여, 외려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낙관에 대한 과도한 낙관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건강, 재정, 직무, 자아상 등 삶 전반의 건전한 영위를 위해서는 낙관과 비관이 모두 필요하다. 긍정심리학의 특정한 편향성은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 행복 연구에 가장 열광하는 이들은 기업의 오너와 임원들이다.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그 대상자들이 이를 긍정적인 심리 상태로 반응하게 만들어주는 심리조작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셀리그먼이 행복 연구를 위해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들 하는 템플턴 상으로 유명한 템플턴재단으로부터 200만 불 이상의 후원을 받아냈따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자본이 학자의 관심사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 NLP와 역할 모델
: NLP는 인간의 신경(감각과 사고의 프로세스)과 언어가 상호 피드백(프로그래밍)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점 위에서 작용하는 기법이다. 언어학 교수인 존 그린더와 임상 심리학자이며 정보통신 전문가인 리처드 밴들러가 공동 개발한 이 기법에 따르면, 자신의 언어 프로그램을 관찰해서 자신의 사고와 행동패턴을 수정하거나, 이를 타인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마찬가지 방식을 통해 다른 이들의 능력과 자질을 자기에게 복사할 수도 있다. NLP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정의는 '배우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NLP는 다른 사람의 좋은 자질을 효과적으로 모방하는 기술이다.
자기계발과 심리학:힐링 강박과 자아의 재구성
:애초에 사회와 정신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는 가령 대공황과 우울증의 상관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신적 위기인 우울과 경제적 위기인 불황이 동일한 단어(depression) 로 불리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의 장기불황과 대공황기로부터였다.
- 자기계발과 심리 치유
: 신자유주의 사회는 의문의 여지없이 개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얹어놓는다. 사회가 져야 할 짐까지 모두 전가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최소국가론과 더불어 국가의 기업화를 주장한다. 국가의 기업의 부담은 줄이면서 개인의 부채는 증가시킨다. 가령 학생들에 대해 정부는 대학 등록금을 감액 혹은 면제해주기보다 학자금대출을 유도하고, 무주택자에 대해서는 임대료를 보조해주기보다 주택담보대출의 비율을 상향 조정하려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은 결국 과다채무와 무한책임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비정상적 사회구조가 정상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의 대타자는 현대인을 자기계발의 주체로 호명한다. 자기계발의 주체는 부정적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을 현실로 긍정한다.
- 아파하는 청춘, 아플 수도 없는 마흔
: 다들 버거운 짐으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상품이 바로 치유적 성격이 강한 심리학적 자기계발서이다.....우리에게 주어지는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는 이 험난한 생활 전장으로 뛰어들기 위해 응급처치로 사용되는 진통제일 뿐이다. 즉 내 영혼의 모르핀 주사이다. 이는 결국 자기계발의 심리학적 진화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 자기계발이 심리학의 언어로 갈아탔을 뿐이다.
- 자기계발과 자아의 재구성
: 심리학과 자기계발의 만남이 유발하는 두 번째 효과는 자아에 대한 관점과 방향을 바꾸어놓는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자아를 치유한다기보다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자아를 조형할 수 있으며(가능성),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조형해야 한다고(당위성)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이는 처음 효과보다 더욱 심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자아의 재창조 가능성과 당위성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령 빈곤의 원인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자기책임론의 기반을 제공해 주는 식이다. 빈곤과 풍요는 결국 나 자신에 달린 것이고, 내가 원한다면 풍요한 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아를 배제하고,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려는 강박적 요구의 다른 영역, 가령 코칭이 상담을 대체하는 것. 상담은 내담자의 과거에 집중, 코칭은 내담자의 미래에 초점.상담에서 과거는 해결해야 할 문제, 코칭에서 미래는 실현해야 할 과업. 상담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고, 기억의 치유를 통해 자아의 건강을 도모한다. 코칭은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희망을 주목하고, 이의 구현을 위한 자원과 능력의 활용에만 관심을 둔다. 즉 치료의 대상으로서의 부정적 과거에서 성취의 대상으로서의 긍정적 미래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자기계발과 경영학 : 인적자원과 개인 경영
: 자기 계발은 현실의 자기를 부정 혹은 간과하고 이상적 자기를 상정하고 재구성한다. 그리고 이는 지식의 습득이나, 인맥의 관리와 같은 인간의 전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러한 재구성의 방식이 경영학의 언어와 논리를 따라 이뤄진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는 곧 시장(의 효율성)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가 개인의 삶에서 재현되는 양태인 것이다.
-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
- 야구부 1매니저와 1분 매니저의 공통점
: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의 사례 ,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라고 할 법한 인물의 30여년 전 저작이 21세기의 야구부 관리에 통할 뿐 아니라,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 파레토 법칙과 개인 경영
- 웰빙과 네트워크 자본의 관리
자기계발과 경영학 : 1인 기업과 혁신 중독
- 톰 피터스와 경영 담론의 대중화
: 인문학적 소양에 기반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학자인 드러커와 비교해보면 톰 피터스가 상당히 피상적인 작가라는 사실이 쉽게 드러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고 기업과 대중의 욕망을 충족하는 일련의 테제들을 도발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경영학의 아버지인 피터 드러커가 담론 형성의 기초를 닦았다면, 톰 피터스는 이의 확산에 주력했다.
- 혁신의 예언자 톰 피터스
- 한국의 혁신 전도사, 구본형
- 욕망에 따른 혁신과 오디션 열풍
자기 계발과 신자유주의
-시장의 보편화, 경쟁의 일반화
- 자기계발과 인적자원
: 기업과 여타 조직의 많은 지식들은 언어화된 형식지explicit knowledge까 아니라 체화된 암묵지Implicit knowledge로 존재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사회는 이러한 암묵지를 언어화하고 체계화하여 반복 가능하게 만든다. 암묵지의 메뉴얼화는 자신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게 만드는 자기계발의 핵심에 자리한다.
-거버넌스와 자기계발
: 신자유주의가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모든 영역에서 경쟁을 추구하는 이유는 시장의 효율성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기능 축소를 추구할뿐더러, 정치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신자유주의가 강행하고 있는 공기업의 민영화(를 방자한 사유화)의 저변에는 바로 국가 행정의 비효성과 기업 운영의 효율성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이러한 국가의 정치에 대한 불신의 결과가 협치governance라고 할 수 있다.
-사회 변화와 자기계발
: 신자유주의는 단지 사변적인 이론체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그 사변이 국가,사회,기업 등의 우리 현실을 자조적 세상으로 주조하고, 우리 자아를 자기계발적 양태로 재구성ㅇ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 체계에 대해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자기계발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이론과 정책을 명확하게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계발의 문화를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면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이러한 규명의 목적은 개인의 성실한 노력과 서로의 끝없는 경쟁을 강조하는 현대적 무간지옥을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꿈꾸기 위해서이다.
3장 자기계발의 형식
자기계발의 매체론적 맥락
: 중세를 지배하는 질서는 개별적 선택의 주체로서의 개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공동체가 개인을 압도하는 것이 중세라면, 근대에는 개인이 공동체와 대등하게 존립한다. 희랍적 인문 교육(르네상스)의 수혜자인 루터가 가톨릭교회와 대립한 것은 바로 근대적 현상인 것이다.
-종교개혁과 인쇄혁명
- 국가 소멸과 자아 폭발
: 구텐베르크가 루터를 예비한 셈이고, 인쇄매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혁명이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 인쇄 매체와 자아 형성
: 고대와 중세의 경우에는 구술매체, 근대의 경우에는 인쇄매체가 중심 매체이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자매체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전자매체는 구술매체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구술매체는 공동체를 존중한다. 인쇄매체는 개인을 강조한다. 따라서 공동채에 의한 매개를 거부하는 주장이 담긴 루터의 논문들이 인쇄 기술을 통해 널리 보급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인쇄 기술에 의한 문서의 대량 보급은 위에서 말한 대로 판단과 결정의 권리와 자유를 확장할 뿐 아니라, 구체에서 추상으로 사유방식을 전환한다.
: 오늘날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중심 매체는 전자매체다. 전자매체는 구술매체적 속성을 지닌다. 공동체를 강화하고, 심지어 지구를 하나의 촌락으로 호명하는 시대가 아닌다. 사상가들도 머리의 사유에서 몸의 경험으로, 개인의 강조에서 공동체의 부활로 논의의 강조점을 바꾸고 있는 실정. 하지만 중심 매체가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온전하게 조형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
진리를 가르치는 자기계발서: 우화
-자기계발 우화의 구원론적 서사
: 주인공에게 문제가 발생한다(타락). 다음으로 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얻는다(전도). 마침내 그는 이 가르침을 따라 문제를 극복한다(구원)
- 자기계발 우화의 일차원적 구조
: 셀픽션은 현세의 복잡한 상황을 단순하게 처리하고 엄혹한 교훈을 기꺼이 수용하게 하는 자기계발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가장 잘 보여준다.
모범을 보여주는 자기계발서 : 자서전
- 교육 수단으로서의 성인전과 위인전
- 근대적 자서전과 미국적 영혼
- 이상적 자아의 표현 수단으로서의 자서전
: 우리는 대체로 그들의 성품이 어떤지를 잘 모르며, 설혹 부정적인 측면을 알게 되더라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스티브 잡스의 심각한 인격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열광하고 있지 않은가. 평전을 말할 것도 없고, 전기조차도 최소한 우리에게 윤리적 교휸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현대의 자기계발적 자서전은 윤리 자체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윤리를 말한다.
동기를 부여하는 자기계발서 : 성공기
- 우리 시대의 영웅, CEO
- 청소년의 역할 모델, 아이돌
- 현실과 이상의 간격
: 계속 말해왔듯이 자기계발의 초점은 자기에 있다. 그냥 해라. 불가능은 없다. 나는 할 수 있어 등 온갖 슬로건으로 포장된 이 복음의 핵심은 자기 가능성에 대한 무한 신뢰이다. 자기계발의 복음은 자기의 극대화 가능성을 신뢰한다.
: 로버트 기요사키의 경우는 사업을 통해 돈을 벌었다기보다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저술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심지어 외부업체인 러닝아넥스에 지불해야 할 배상금 2,400만 달러를 아끼려고 리치 글로벌의 파산 신청을 한 인간 망종이다. 그러나 모호하게 포장되어 있기에 독자들은 그가 재테크의 달인이라고 믿게 된다.
4장 자기계발의 주체
자기 계발의 소비자 : 세일즈맨
- 영업과 자기계발 사업의 공생
- 다단계의 등장
- 다단계의 종교성
- 다단계와 자기계발의 공생
: 자기계발을 소비한다는 것은 그들이 난국에 처해 있다는 신호이다. 결국 자기계발 시장은 사회적 약자를 찾아다니며 주요 고객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자기계발의 소비자:어린이
- 유년기의 탄생과 소멸
- 한국의 아이들과 영어몰입교육
-열두 살에 부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사회
- 빛나는 미래를 꿈꾸는 자기계발적 어린이
자기계발의 소비자 : 여성
- 불안사회가 추구하는 안전성의 덕목
- 부자 아내로 거듭나는 내조의 여왕
- 무거운, 너무나 무거운 그녀의 야망
: 자기계발이 불어넣은 야망 덕분에 멀리 있는 이상을 좇느라 눈앞에 있는 현실을 외면하게 되고, 나아가 그 현실과의 간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보게 된다.
: 자기계발은 그녀들에게 꿈과 야망을 심어주는 대신에 생명력을 빨아먹는다. 이건 단지 여성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에 매달리는 모든 약자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자기계발 상품의 구매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또한 소비의 강도에 비례하여 그 대가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약자의 빈틈을 파고들게 마련인 자기계발의 미혹에 넘어가면 인생이 피곤해질 뿐이다.
자기계발의 소비자 : 직장인
- 노동자와 자기계발
- 밀림 혹은 전장으로서의 직장
- 학교 혹은 도장으로서의 직장
: 불안 대신에 확신을 찾으려는 이런한 노력은 급기야 학습법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다. 흡사 무술 수련 자체보다 무술 비전에 관심 갖는 얼치기 무도인들처럼 말이다.
: 독서 경영이나 인
문 경영이 널리 유행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심지여 경영학 전공자가 고전에 대해 책을 펴내고, 미숙한 독서가들이 독서법이나 서평집을 내고 있는 형편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불안한 현실을 건너기 위해 학습법을 학습의 대상으로 삼아 메타적인 안정감을 확보하려고 한다.
: 자기계발서는 결코 무해한 오락 서적이 아니다. 이에 대한 공부(독서)는 필연적으로 독자의 내면에 일정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자기게발의 프레임이 세계를 밀림으로 보게 하든, 아니면 학교로 보게 하던 간에 그 수행하는 기능은 동일하다. 자기계발의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지배 체제에 복속하게 만든다는 것에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자기계발과 대중
- 자기계발의 대중 정념 조작
- 파시즘과 자기계발
: 자기계발 상품은 구매자의 정념을 잘못된 방식으로 자극한다. 의도적으로 독자의 불안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인간의 영혼을 잠식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은 맹신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불안과 광신은 집단 안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법이다. 확실한 증거를 원한다면, 이지성의 팬카페 '이지성의 폴레폴레'나 '시크릿' 팬카페 '비욘드 더 시크릿'에 가보라. 불안과 의존의 동일한 정념을 공유하는 이들은 상호간의 소통을 통해 서로의 믿음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 자기계발 시장의 대중 조작 방식은 파시즘의 대중 동원 방식과 본질상 궤를 같이 한다. ㅇ
자기계발과 엘리트
- 자기계발과 문화자본
- 홍정욱과 안철수의 공통점
- 영어교육과 구별짓기
: 강준만 교수는 <한겨레21>에서의 칼럼을 통해 영어 광풍이 합리적인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선 애초부터 영어 공부의 주목적은 실용성이 아니다. 내부 경쟁용이다. 영어 공부는 일종의 권력투쟁이다. 엘리트들은 영어를 배우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에서 자고 자란다....영어야말로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구별 짓기의 주요 수단인 셈이다. 한국에서의 영어 구사 능력은 사실상 내수 상품이다. 실질 사용가치는 거의 없다.
: 영어 광풍 자체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영어 광풍을 통제하는 데에 성공하더라도 지배계급은 다른 항목을 부각시켜 여전히 계급적 우위를 점하고자 할 것이다. 이는 결코 영어 교육에만 한정된 논의가 아니라, 모든 자기계발에 적용되는 것이다.이제 우리의 시야를 안(자기)에서 밖(사회)으로 돌려야 한다. 이러한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자기계발의 무간지옥도 바뀌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에필로그, 자기계발로부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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