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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마틴 로이드 존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교리 강좌 시리즈 1)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저자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출판사
부흥과개혁사 | 2007-07-15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교회에 복음과 설교의 영광을 분명하게 드러낸 20세기 최고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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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적으로 교리를 공부해야 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교리 강좌를 읽기 시작했다. 

1권만 해도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이지만, 일반 신자를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옮긴 책이라 쉽게 읽힌다. 



마틴로이드존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1. 교리 공부의 목적과 방법


1. 성경 교리란 무엇인가

(1) 성경은 일반 세계사가 아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역사도 아니다

(3) 성경은 거대한 구속 이야기다.


2. 어떻게 성경 교리를 공부할 것인가

(1) 교리 공부는 신학 공부와 다르다

(2) 교리 공부는 변증학과 다르다.


3. 왜 우리는 성경 교리를 공부해야 하는가

(1) 성경이 교리를 말하고 있다

(2) 교리를 공부하지 않고 성경은 연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3) 교회는 수십 세기 동안 필수적으로 성경 교리를 강조했다

(4) 성경 교리 공부의 목표는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것이다.


- 신학과 관련해서 한 가지 위험이 있음을 꼭 말하고 싶습니다. 철학과 사색, 그리고 당신 자신의 생각과 인간의 이성을 도입하는 순간, 당신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때로 위험할 수도 있는 어떤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입장은 신명기 29장 29절의 입장입니다. "감추어진 일[궁극적인 설명]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죄의 교리를 다룰 때, 누군가 '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에 대해 알기 원한다면 저는 역시 답해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추측할 수 있고 추론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성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은밀한 일들이 아닌 계시된 일들에만 우리 자신을 국한시켜야 합니다.


- 교리를 공부하지 않고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우리 주님 당신 유대인들의 진짜 문제는 그들이 문자에만 얽매여서 그 정신은 결코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교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말(words)을 안다는 데 만족하여 말씀(word)은 결코 깨닫지 못했습니다.


- 궁극적으로  공부는 하나님을 참으로 알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에 들어가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길이 얼마나 경이로운가를 어느 정도 알게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렇습니다. 계속 성경을 읽고 연구하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세부적인 것들에 매여 헤매지 마십시오. 이 위대하고도 강력한, 교리의 최고봉들을 뽑아 내어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합시다.


2. 계시


1. 하나님의 대한 의식


2. 하나님을 찾는 두 가지 방법

(1) 인간의 노력과 추구에 의지하는 방법

(2) 계시에 의존하는 방법


3. 계시의 방법

(1) 일반 계시

(2) 특별 계시


4. 성경에 나타난 특별 계시의 방법

(1) 신적 현현

(2) 언약의 사자

(3) 직접적인 말씀

(4) 기적과 표적과 기사

(5) 꿈과 환상

(6) 영감


5. 특별 계시를 통해 알려진 하나님의 구원

(1)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적 행동을 보여 준다

(2) 구원에 대한 계시는 오직 성경에만 주어졌다


하나님을 찾는 두 가지 방법

- 내적인 빛  (당신은 그저 자신을 포기하고 이 빛과 빛의 인도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 이성과 지혜와 이해에 근거한 방법

- 역사를 살펴보고 역사의 과정을 추론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이를 수 있다는 말

- 순전한 추론과정에 몰입하는 것

- 도덕적 논증

--> 위와 같은 것들이 바로 많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법들임을 상기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대답은 이 방법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말로 표현합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고전1:21)


아무도 위와 같은 방법들을 따라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 자신의 성품, 그분의 무한하심, 그분의 절대적인 성품들과 자질들, 그리고 그분의 완전한 거룩하심. 이 모든 성품들 자체가 본질적으로 이성이나 직관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도록 만듭니다.

2. 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특성과 본성을 덧붙여 생각하면,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인간의 정신은 너무 작기 때문에 하나님을 헤아릴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그리고 타락으로 말미암마 인간의 모든 기능과 능력이 죄와 자연적인 악의에 영향받았다는 것을 이해하면 다시 한 번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언제나 이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이미 싪패로 입증된 진부한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자신의 은혜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길 기뻐하실 때에만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소망할 수 있으며, 기독교는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음을 가르치고 있다는 이 근본 원리를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이성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으로는, 아무리 잘되어 봐야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만 도달할 수 있을 뿐이라고 바울은 주장합니다.


-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장막을 걷고 그분 자신에 대한, 그리고 그분의 위대하고 은혜로운 목적들에 대한 통찰과 지식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주제입니다.

이 시점에서 한 마디 첨부하자면, 성경을 공부할 때 이런 생각, 즉 이런 계시의 개념을 항상 명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길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위대한 목적과 의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내가 보든 보지 못하든 그 계시는 여기 있습니다. 계시는 주어졌습니다. 이제 제기되는 문제는 내가 이 책을 신뢰할 수 있는 가, 이 책이 말하고 주장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가, 이 책의 주장들을 믿고 그 권위에 나 자신을 복종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3. 성경의 권위


1. 계시와 영감


2. 영감의 의미

(1) 영감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

(2) 성경의 영감은 축자적 영감


3. 축자 영감의 증거

(1) 성경은 영감에 대해 명확한 주장을 한다

(2) 축자 영감을 지지하는 결정적 구절들

(3) 성경이 성경을 대하는 태도

(4) 성경의 일관성

(5) 가장 중대한 증거 -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6) 성령의 조명 외에 영감성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 저는 성경 자체가 축자 영감(verbal inspiration)을 주장한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축자 영감이란 그저 생각이나 개념들만 영감된 것이 아니라, 실제 기록이 특정한 단어들에 이르기까지 다 영감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단순히 내용에서만 옳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단어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 성경이 하나님에 의해 축자적으로 영감 되었다고 말할 때, 이 말이 성경을 기계적으로 받아썼다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저자들 간에 문체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영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저자가 기록하는 가운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통제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축자 영감이 의미하는 바는 성령께서 저자들을 심지어는 특정한 단어를 선택하는 일에서조차 이와 같이 지배하고 통제하고 인도하여, 오류를 범하는 것을 막으시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결과를 산출해내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 그들은 그들이 갑자기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시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언제 그것이 임했는지를 정확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았고, 사명을 받았고, 그리고 말씀이 임했습니다.


-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이자 대단히 귀중한 논거는 어떤 선지자들은 때로 그들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대단히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 더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은 선지자 자신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고 말하는 다니엘서 12장 8절의 진술을 생각해 봅시다.


- 육십육 권의 성경은 적어도 일천육백 년이 넘는 기간에 사십 명 이상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전체에는 오직 한 가지 유형의 교리와 한 가지 유형의 도덕만이 존재합니다. 이 것을 달리 설명 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 구약에는 한 가지 정신, 즉 메시아의 소망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시대마다 사람들은 달라지지만 메시아적 소망은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에도 오직 하나의 위대한 주제가 있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입니다. 모든 것이 그를 가리켜 보이고 있고 모든 것이 그에제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자들이 다양하다는 것은 아무런 차이도 만들지 않습니다. 오직 이 하나의 위대한 주제만이 존재합니다.


- 만일 여러분이 성경의 권위와 축자 영감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주님 자신에 대해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 아직까지도 몇 가지 난점이 남아있습니다만, 그것들이 결코 교리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숫자의 문제이거나 아니면 아마도 필사자나 번역가의 실수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중대하고 본질적인 교리의 이해를 어렵게 하는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4. 우리는 어떻게 교리를 발견하는가

1. 왜 이 주제를 살펴보아야 하는가


2. 이성, 오성, 지성의 역할

(1) 우리의 최종적 권위는 성경이다.

(2) 우리는 성경에 완전하게 복종해야 한다

(3) 자신의 논리와 체계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4) 이성, 오성, 지성의 역할에 대한 결론


3. 교리에 도달하는 방법

(1) 교리를 발견해 나갈 때 지켜야 할 일반적 규칙

(2) 실제적인 지침


4. 교리에 대한 의견의 차이

(1) 의견차가 발생하는 이유

(2) 성경에는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3) 반드시 알아야 하는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교리도 존재한다


- 우리는 성경에 완전하게 복종시켜야만 합니다. 이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과 그 교리를 읽을 때는 스스로에게 지금 나는 나의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영역에 들어가고 있노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분명히 나의 이해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계시라는 말 자체가 분명히 이와 같은 사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 만일 내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 우리의 위대한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의 말, 곧 이성의 최고의 업적은 이성에는 끝과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우리의 이성은 우리를 계시의 영역에 들어갈 때까지 이끌어 주며, 거기에서 하나님은 자비 가운데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 성경에 자신을 완전히 복종시킨다는 말은 우리가 진리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진리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에 동의할 뿐 아니라, 어떤 교리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성경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그 교리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 믿음이란, 오직 성경에 있는 내용만으로 만족하기로 매우 신중하게 결심하고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참된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 보기만 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질문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걸 모르겠어요, 저걸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믿음은 우리가 이 성경 앞에서 입을 닫고 기꺼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계시하고자 원하시는 모든 것, 내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성경에 계시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해도 만족합니다." 예를 들면 악의 문제-그것이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왔는가?-를 토론할 때 이 점을 염두에 두도록 하십시오. 성경에서는 왜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셨는지 말해 주지 않기 때문에, 만일 여러분이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의문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나는 몰라요. 성경이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성경이 나에게 말해 주는 것 이상으로는 아는 바가 없어요." 이것이 한가지 아주 중요한 원칙입니다.


- 철학과 계시를 뒤섞으려는 끊임없는 유혹을 온 힘을 다해 피해야만 합니다......사람들이 성경의 특정한 진술을 접하게 되었을 떄 "나는 그것을 이해 할 수는 없지만 기꺼이 믿겠습니다." 라고 말하기보다는,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일 수 있단 말이요?"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 순간 이 사람들은 철학자로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복음주의자들인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일관되지 않게 행동하는 잘못을 너무 자주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현대주의자와 논쟁을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럴 수가! 그는 기적을 믿지 않고,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더군요. 자신이 기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예요" 이런 식으로 비난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때로 저 위대한 용어들, 즉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예정하사"라는 말이나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택하심을 받은"과 같은 말을 보게 될 때, 우리 복음주의자들도 "그 말이 맞다면 도대체 하나님이 어떻게 공평하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라는 식의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현대주의자 친구가 기적에 대해 취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행동입니다....하나님의 진리이고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이해하든 못하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예를 들자면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로마카톨릭에 대해 하는 답변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에게 와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하고,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용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데요."

"물론 그러시겠죠" 그들은 대답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의 전통이 있답니다. 계시는 신약 정경이 완성될 때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진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아 왔습니다. 사도직과 사도적 깨달음은 계속 이어져 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와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이 성경과 대당한 권위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확고하고 결연하게 "아니요!"라고 말해야 합니다....그것이 성경으로부터 입증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가르침을 거부합니다.


- 성경이 어떤 사람들을 향해 씌어진 것인지 상기해 보지 않은 채 성경 연구에 착수하면 종종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 서신들이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의 학생 또는 교리 교수를 향해 씌어진 것이 아니라 노예들과 평민들, 보통 사람들에게 씌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쓸모 없는 주석서들이나 골칫거리들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등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씌어진 것이었습니다....바울이 이 서신서들을 썼을 때, 그는 그 글을 받는 사람들이 당연히 자기의 글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이것이 바로 선조들이 성경의 명료성이란 말을 사용했을 때 의미했던 바입니다.


- 사도 요한은 우리가 기름부음을 받았기 대문에 그런 의미에서의 가르침은 필요치 않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그래서 우리는 보통 사람들은 성경을 읽기에 적합하지 않고 오직 카톨릭 교회만이 성경을 바르게 해설할 수 있다고 하는 로마카톨릭의 주장을 거부합니다.


- 때로는 성경 구절들로부터 교리를 추론하는 일이 상당히 간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 구절들을 읽고는 "이 구절들은 분명 이런 뜻이로군"하고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연역법, 즉 의미를 끌어내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귀납법이라고 부르는 또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예로 들어 봅시다. 성경 어디에도 암시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삼위일체 교리가 진술 된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대해 언급한 구절들을 접하게 되면 여러분은 스스로 이 구절들을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세 위격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의 증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연역법이 아니라 귀납법입니다. 이것은 특정한 구절들로부터 교리를 세워 나가는 방법입니다.


- 성경은 하나의 위대한 메시지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완벽한 전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모순을 일으키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사의 큰 인물들이 이 간단한 규칙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주요한 이단이 되어 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시면 놀라실 겁니다.


교리에 대한 의견의 차이

- 자신의 철학을 끌어 들이거나, 단 하나의 본문, 혹은 본문의 절반에만 근거해 교리를 만들어 내느 등의 잘못. -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이론을 이미 가지고 있는 채로 출발하려는 경향이 있고, 시작 후에는 성경을 자신의 이론에 끼워 맞추려 함

- 자유의지나 그 비슷한 것들에 대해 특정한 이론을 가지고 출발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성경의 교리들에 대해서는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 확실치 않은 세부 사항에 대해 자신들만의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경우

- 명백히 상징적인 의도로 씌어진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길 고집하는 경우


- 성경에는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어떤 문제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그 경건성이나 능력이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일치할 수도 없는 그런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문제를 만났을  때는 분명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그런 문제들을 입증할 수 없으며 장차 우리가 영광에 이르러 모든 것이 명백하고 분명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부분적으로 알고 이해합니다. 우리의 지식을 완전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우리가 완전하게 알고 있고, 또 알아야만 하는 확실한 교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길에 필수적인 교리들입니다....이 문제에 이르러서는 경건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종종 의견이 나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이런 일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내가 "나는 이것은 믿는데 저것은 믿을 수가 없어요"라고 얘기하면 상대방은 말하기를 "좋아요, 우리 둘 다 구원의 길에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한에는 괜찮습니다" 라고 할 것입니다......하지만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문자적, 육체적인 부활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떤 논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교리는 최종적이며 또한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이거나 절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상대의 말을 들어 줍시다. 관용하도록 합시다. 우리에게 이러한 문제를 입증한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위대한 구원을 함께 누리며, 장차 감추어진 일들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주님이 우리를 아시듯 우리가 알게 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시다.


5. 하나님의 존재와 본성

1. 하나님에 대한 교리의 중요성


2. 하나님의 존재

(1)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선언한다.

(2)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증들


3.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

(1) 우리의 최고의 필요이자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것

(2)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능한가


4. 하나님의 본성

(1) 이 주제에 접근하는 합당한 자세

(2) 무한하심

(3) 영이심

(4) 인격이심

(5) 통일체이심


-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선언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무언가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당연한 일로 간주합니다. 성경의 첫 번째 구절을 살펴봅시다. 창세기는 절대로 "자, 다음 증거들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가 존재하셨으므로 그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확증한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단지 그분의 존재를 진술할 뿐입니다.


- 우주론적 논증, 목적론적 논증, 도덕적 논증......그런데 성경이 이런 논증들에 대해 가르쳐 주는 바는 이러한 논증을 통해서는 결코 믿음이 생겨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들은 소극적 의미에서 유용하기는 하지만 결코 믿음으로 이끌지는 못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믿음이 없이는, 믿음으로 이끄는 성령님의 내적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이 사실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주시는 선물인 믿음의 선물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의 최고의 필요는 언제나 하나님을 아는 것이어야 하며,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능한가?'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믿지만 그분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르침은 약 이백 년 전에 매우 유행했습니다. 그것은 이신론(desism)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에도 그 가르침을 믿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들은 시계 제작자가 시계를 만들듯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계 태엽을 감아 내려놓고는 더 이상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 합니다.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기대하는 다른 어떤 축복들보다도 더 중요한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추구, 모든 예배, 모든 노력의 목표가 트별한 체험이나 특정한 복을 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즉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분, 복이 아니라 복 자체의 근원이자 샘이 되시는 분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우리의 최고선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목표이자 목적지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의 이 말씀은 팔복의 하나로서 다른 모든 것을 요약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우리가 갈망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며, 우리의 모든 노력의 이유도 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 우리가 용서받았음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죄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것도 옳은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은 완전히 정당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망들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것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전체적인 마음가짐은 대단히 그릇되고 부적절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문제의 대부분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소망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이 소망을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요?


- 하나님의 불가해성(incomprehensibility of God), 인간은 하나님을 최종적으로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 하나님은 최종적으로는 불가해한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을 부분적인 지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부분적인 것이라 해도 그것은 진정한 지식입니다. 비록 그것이 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지식은 진실한 지식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이끌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본성

(1) 무한성 (유한하지 않음)

요한계시록 4장 8절에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성은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곳에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반드시 이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신인동형론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것으로 인해 잘못을 범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 가운데 다가가고 있는 분이 바로 이 무한하시고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노력합시다.


(2)영적인 존재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에 대한 가장 놀라운 증거는 후에 살펴 볼 그분에 대한 또 하 나의 진리, 즉 그분의 편재하심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곳에, 그것도 같은 시간에 모든 곳에 계시다는 진리입니다.


(3) 인격성

범신론을 믿는 사람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6. 하나님의 절대적 인격의 속성들

1. 하나님의 속성들과 이름들

(1) 이 교리를 고찰하는 목적

(2) 이 교리에 접근하는 방법


2. 하나님의 속성

(1) 하나님의 속성의 의미

(2) 하나님의 인격적 속성과 도덕적 속성


3. 하나님의 인격적(비공유적)속성

(1) 영원과 불변성

(2) 편재성

(3) 전지하심

(4) 전능하심

(5) 절대적 복되심

(6) 영광


7.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

(1) 거룩하심 (2) 의로우심, 공의로우심 (3) 선하심과 사랑 (4) 신실하심


8. 하나님의 이름들과 성삼위일체

1. 하나님의 이름

(1) 이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2) 하나님의 이름들과 그 의미


2. 삼위일체

(1) 삼위일체 교리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2)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

(3)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거

(4) 세 위격의 관계


- 우리는 항상 교리와 그 실제적 목적, 이 두 가지를 모두 붙잡고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를 진정으로 소망합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에 대해 갖고 계신 계획에 우리를 복종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 성경에서 하나님께 돌려진 몇 가지 이름들

(1) 엘 : 첫 번째, 최고라는 의미. 힘과,능력, 즉 강력함이라는 개념 전달

(2) 엘로힘 : 이 것은 복수 형태임, 강력한 분일 뿐 아니라 두려워해야 하는 분이라는 개념 전달, 하나님이 창조와 관련하여 자신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시는 이름

(3) 엘룐 : 높고 고귀한 분이라는 의미.

(4) 아도나이 : 전능하신 주, 만물이 복종하며 모든 사람이 섬기는 통치자라는 의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말씀하실 때 흔히 사용하신 이름.


(*지금까지 이름은 하나님을 위대하고, 높고, 강력하고, 영광 가운데 높이 들리우신 초워러적 하나님으로 묘사)


(5) 샤다이 : 하나님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묘사. 하나님의 권능만이 아니라, 특별히 그분의 은혜와 자비, 그리고 사람들과 맺으시는 관계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제궈너 강조. (우리의 식량을 위해 바람과 비와 눈을 통제하시는 하나님)

(6) 야훼 : 성경이 이야기 하는 최고의 이름. 하나님이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묘사하신다는 것을 의미.

언약을 맺으실 때 하나님은 통상적으로 자신을 그 위대한 이름 여호와로 묘사합니다.


여호와에 수식어가 첨가된 경우

(6-1) 여호와 사바오트 "만군의 여호와" - 천사들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안전.

(6-2) 여호와 이레 :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

(6-3) 여호와 로페 : 치료하시는 여호와

(6-4) 여호와 닛시 : 여호와 나의 깃발

(6-5) 여호와 샬롬 : 여호와가 평강을 보내시며 여호와는 우리의 평강.

(6-6) 여호와 로에 : 여호와 나의 목자

(6-7) 여호와 치드케 : 여호와 우리의 의

(6-8) 여호와 삼마 :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삼위일체

- 우리는 성경의 계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이 교리입니다. 어떤 인간도 삼위일체의 교리를 생각해 낼 수는 없습니다. 이 교리는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다른 무언가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왔으며 자신들의 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삼위일체를 생각해 내지는 못했습니다.


- 이것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십 세기에 걸쳐 교회의 위대한 지성들이 이 문제로 씨름했고 설명해 내려 노력했지만, 그들 역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의 삼위일체

  "신성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 계시다. 이 셋은 하나님으로서, 본질상 동일하시고, 능력과 영광이 동등하시다."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꼐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성부가 하나님이신 것처럼 말씀도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두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신성만이 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시니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상기하십시오.


-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섬삼위일체의 교리를 부인하려 힘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세 위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위격만 있으며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시다. 하지만 그 한 하나님이 자신을 여러 다른 방식으로 계시하실 수 있다. 그분은 어떤 때는 자신을 성부로 계시하시고, 다른 때에는 자신을 성자로 계시하신다. 그리고 또다른 어떤 때는 자신을 성령으로 계시하신다." 그리고 나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인간적인 유추를 사용하려 애씁니다. 예를 들어 같은 사람이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설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이 세 가지 다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모든 것을 부인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양태들이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신성에는 세 위격이 있으십니다. 그 위격들은 서로를 언급합니다. 그리스도가 다른 위격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안의 다른 위격들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한 하나님이 계셔서 자신을 이같이 서로 다른 양태로 보여 주신다는 어떤 가르침도 거부합니다.

(*위격 ; 자유 의지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

*양태 : 사물이 존재하는 모양이나 형편, 모습, 상태)


- 구약 성경에는 신약 성경만큼 삼위일체 교리가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성자가 성육신 하시고 성령을 보내시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삼위일체의 교리가 완벽하고 분명한 형태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오신 이후에야 사람들이 이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했으며, 심지어 지금도 이것은 여전히 거룩하고 신비로우며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입니다.

하지만 구약에도 이 교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 엘로힘(복수 형태의 하나님의 이름).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창 3:22)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창 11:7)

: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이사야 6:8)


- 세 위격의 관계

: 그들은 영원히 공존하신다, 성자가 성자라고 불릴 때 그것은 그분이 성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다거나 조금이라도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타나시우스 신조

: 성부는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며, 성령 역시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신다. 성부는 주님이시고, 성자도 주님이시며, 성령 역시 주님이시다. 그러나 세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주님만 계신다. 기독교의 진리에 의해 각각의 위격 자체가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시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듯이, 그 동일한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세 하나님과 세주님이 계시다고 말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9.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1. 작정의 교리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

(1) 성경이 작정의 교리를 말하고 있다

(2) 작정의 교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3) 작정의 교리는 우리를 많은 오류로부터 구해 준다

(4) 작정의 교리는 커다란 위로를 준다


2. 작정의 교리에 접근하는 자세

(1)당파심을 버리고 접근해야 한다

(2) 철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3)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3. 작정 교리의 기본 명제들

(1)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변치 않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2)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결정한다

(3) 하나님의 모든 작정은 무조건적이고 주권적이다

(4) 하나님의 작정은 효력 있는 작정이다

(5)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의 본성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6) 하나님은 창세전에 구원을 작정하셨다

(7)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 만일 여러분이 "성경의 순서상 그리고 논래 전개상 다음에 어떤 주제가 다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많은 사람이 우리는 즉시 창조의 교리를 다루어야 한다고 대답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습니다....그렇게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기 때문에 옳은 일이 아닙니다.


- 창조의 교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성경이 그 문제를 언급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시는 일을 시작 하기 전에 어떤 일들을 생각하시고, 결심하셨으며,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이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실제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마음과 의도 속에서 몇 가지 사항이 결정되었으며, 그렇기 떄문에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명백한 연대기적(이런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순서이자 논리적 순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 혹은 방법에 대한 성경의 묘사를 흔히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eternal decrees of God)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무엇인가 행하시기 이전에 결심하시고 정하신 일들입니다.


- 우리는 주관적인 경험과 주관적인 구원에 너무 관심을 갖는 나머지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이 위대한 교리는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더욱 많이 알수록, 우리는 구분을 더 많이 예배할 것입니다.


- 개인적으로 이 특별한 교리만큼 저에게 커다란 위로를 주었던 것은 일찍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유한한 세상에 잠시 지나가는 미미한 피조물일 뿐인 나의 배후에 하나님 자신의 영원하신 작정이라고 하는 이 교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저에게 더 큰 위안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 이 교리를 고찰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편견들과 모든 종류의 당파심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당파심(party spirit)'이란 말은 우리 모든 사람은 특정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를 발견하는 일보다는 이미 믿어 왔다고 생각하는 일을 고수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부정문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이 주제에 철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철학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큰 저주입니다. 철학은 그 정의상 언제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철학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문제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 믿음은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즉각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기꺼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요. 나는 주어진 것은 모두 다 받아들이되 그 이상 알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계시하신 것으로 만족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는 서로 조화시킬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이율배반(antinomy)이라는 용어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율배반이 무엇일까요? 당신 스스로는 조화시킬 수 없는 두 개의 진리가 주어진 상황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결정적인 이율배반이 몇 가지 있으며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는 이들을 기꺼이 받아 들여야 합니다.


- 작정 교리의 기본 명제들

1.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의 피조물에 대해 변치 않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이것을 부정문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못해 하는 일이란 절대로 없다. 하나님의 활동들에 불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다른 형태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결코 후회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창조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구원에 대해, 이 세상의 모든 삶에 대해, 이 모든 것의 마지막과 궁극적 운명에 대해 명확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 그분이 일어나게 하신 모든 일은 그분 자신의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이며, 그 계획은 고정되어 있고, 확실하고, 변하지 않으며, 절대적입니다.


2. 하나님의 계획은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일과 사건들을 포괄하겨 결정한다

-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면, 자유롭고 자발적인 행위자들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행동들도 당연히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진술입니다.....사도바울은 이 문제의 개요를 매우 분명하게 기술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0-11)

-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우리는 제비를 행운과 우연의 문제로 간주하지 않습니까? 성경도 그렇게 인정하듯 제비를 뽑는 행위는 우리가 합니다. 하지만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작은 참새 한 마리가 죽어서 땅에 떨어집니다. 우리는 우연이라고, 그냥 벌어진 일이라고 말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 작은 참새 한 마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나니" 아주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도 하나님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로운 행위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잠언 21장 1절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으미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왕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마치 물을 통제하듯 그를 통제하고 계시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빌립보서 2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도,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악을 유발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악을 승인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한 행위자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허용하시며, 그분 자신의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악을 지배하십니다.

죄를 금하고 벌하는 도덕법을 정하시는 하나님의 작정이 또한 죄의 발생을 허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악에 한계를 설정하여 그 악이 벗어나지 못할 정확한 궤도와 이루게 될 결과를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도록 지배하십니다.


3. 하나님의 작정은 어떤 의미에서도 인간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무언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심지어 하나님이 미리 아시는 바 사람들이 앞으로 취할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무조건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 자신의 의지와 그분 자신의 거룩하심 외에는 어떤 것에도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삶에 원인과 결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조건적인 행동과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자연과 인생에는 원인과 결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교리가 말하는 것은 모든 원인과 결과, 자유로운 행동들은 하나님 자신의 작정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같이 특별한 방식으로 일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계획하신 결말이 확실하게, 그리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도록 정하셨으며, 그 무엇도 이것을 방해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다고 정하셨습니다.


-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언제나 "그 기쁘신 뜻대로"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무엇으로 인해 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 왜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행한 일 때문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임신조차 되기 전에, 하나님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도 그들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으로 주권적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게께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심지어 그렇게 생각하는 일조차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4. 하나님의 작정은 유효적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인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의 전능하시과 그분의 능하심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들은 결코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5. 하나님의 작정은 그분 자신의 최고로 지혜롭고, 자비하시고, 거룩한 본성과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 하나님의 작정은 자유로운 행위자들과 자유로운 행동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유를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궁극적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지배하십니다.....여러분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둘을 어떻게 조화시킵니까?" 저는 "저로서도 조화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성경이 두 가지 사실, 즉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자유로운 행위자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워너하신 작정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6. 사람들과 천사들의 구원, 특별히 그들 중 일부의 구원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이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 당신이 영광 가운데 들어가기가지는 궁극적인 이해를 보류해 두어야 합니다. 지금 이 곳, 시간 속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일관성이 있으심을 믿고, 하나님이 그의 영워너하신 작정과 창세전에 결정하신 일들에 대해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이 당신에 대해 결정하신 일들은 확실하고, 안전하고,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10. 선한천사들

1. 천사의 교리를 고찰하는 이유

2. 천사에 대한 일반적 사항들

(1) 천사는 피조된 존재다

(2) 천사는 영적인 몸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다

(3) 천사에게 성별이 있는가

(4) 천사는 죽지 않는다

(5) 천사는 사람보다 우월하다.

(6) 천사의 이름과 칭호

(7) 천사의 조직

3. 선한 천사들의 임무

(1) 일반적 임무 (2) 성도를 섬김-가장 큰 임무 (3) 심판

4. 천사의 교리를 탐구함으로써 얻는 유익


- 성경의 가르침으로 판단할 때, 천사들은 우리와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께 사용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시간 동안, 그들은 우리를 준비시키는 일을 돕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의 회심 이야기를 보면 고넬료가 어느 날 기도하고 있을 때 한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 나타나 그에게 말하자면 자신의 구원에 대한 '예고편'을 보여 주고 그의 구원이 실현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주었습니다.....여러분도 이와 같이 특이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배의 장소에 가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우연히 누구를 만나게 되는 그러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사들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어떻게 해서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고도 하나도 다치지 않고 나왔는지 기억하시니까? 그는 왕에게 놀라지 말라고 말하며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다"고 설명했습니다.


11. 마귀와 타락한 천사들

1. 이 교리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

2. 마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마귀를 지칭하는 이름들

(2) 마귀는 인격이다

(3) 마귀의 기원

(4) 마귀의 능력

(5) 마귀의 특성

(6) 마귀가 하는 일

(7) 우리는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


- 저는 종종 자신의 문제는 단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자나 정신분석가에게 보내졌던 사람들을 만나 왔습니다. 이 떄 치료의 핵심은 그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자신 및 자기의 개인적 죄와 실패의 탓으로 돌리던 일들이 사실은 성경에 마귀라고 묘사된 이 강력한 대적자의 탓일 뿐임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 마귀가 우리를 깨어나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우리를 잘못된 열심으로 가득 차게 해서 육적인 일과 영적인 일을 혼동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가장 열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원수의 영향을 최고로 받도록 만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성경이 마귀에 대해 두 번재로 가르쳐 주는 것은 그가 인격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현시대에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불신자들뿐 아니라 또한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악의 힘이나 악한 영향을 믿는다고, 혹은 우리 안에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음은 믿는다고 말하지만, 인격적인 마귀를 믿는 것은 대단히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비성경적인 태도입니다.


- 복음서의 우리 주님이 시험받으신 기사 자체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해 줍니다. 우리 주님의 시험이 어딘가 외부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에, 만일 누군가가 악에 대한 시험은 오직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우리 안에 어떤 능력이나 긍정적 특질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 주님이 받으신 시험에 대해서는 설명해 낼 방법이 없습니다.


- 사탄의 능력이 심지어는 천사장의 능력보다도 더 크다고 암시되어 있음을 발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유다서 9절에는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워너하노라 하였거늘"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장인 미가엘조차 마귀에게 비방하는 판견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 마귀의 특성 : 교만, 악의, 교활함, 거짓됨

- 하나님을 반대하는 모든 것, 그것이 마귀의 활동입니다.


마귀는 어떤 방법으로 이 일을 할까요?(불신자에게)

1) 불신자들이 진리에 눈이 멀게 한느 것

2) 사람들의 삶을 명령하고 통제하는 것


(신자에게)

1) 우리의 일과 활동을 방해한다.

2) 우리를 낙심시킨다

그는 우리의 정욕을 자극하고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언짢은 마음, 우리의 우울함, 우리의 절망감, 우리의 자포자기하는 마음 대부분은 그의 책임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생각에 파묻혀 스스로 자신의 약점, 실패, 무능력함 등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때는 언제든지 이것이 마귀로 인한 것임을 정말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마귀가 사람들이 자신을 들여다볼 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을 내향적으로 만들며, 그래서 우리 안에 이 모든 언짢고 우울한 기분을 만들어 낸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앞에서 상기시켰던 것처럼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합니다. 그는 질병에 걸리게 할 수 있습니다.....


- 마귀의 능력은 하나님 아래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야고보


- 두 측면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절대 가볍거나 경박해서는 안 됩니다. 결코 무모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대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대적이 강력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겁쟁이처럼 두려움 속에 우리의 삶을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12. 세상의 창조

1. 창조에 대한 일반 사항들

(1) 성경이 창조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주어진 설명은 정확하다.

(2) 하나님은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다

(3)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에 따른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동이었다

(4) 창세기에는 하나의 창조 기사만 기록되어 있다


2. 창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창조는 삼위 하나님의 역사다

(2) 시간은 창조와 함께 시작되었다

(3) 창조와 관련된 성경의 용어

(4)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의 관계


3 창조의 세부사항

(1) 창조의 날들

(2)"날"의 의미


4, 창조와 현대 과학

(1) 창조교리와 확증된 과학적 사실은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2) 창조와 진화의 문제


- 창조는 "태초에 이미 존재하던 재료를 사용함이 없어 보이는 우주와 보이지 않는 우주 전체를 만드시고 그리하여 하나님 자신과 구분되지만 항상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를 만드신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 (벌코프, Berkhof)라고 정의됩니다.


- 성경은 창조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창조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발생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다.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그분의 사랑 대문도 아니다. 그것은 그분의 뜻과 영광에 따른 자유로운 행동이었으며,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 성경이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사실들을 진술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대단히 놀랍습니다. 창세기를 생명 및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이집트와 바벨론 문헌의 기사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는 점이 종종 지적되어 왔습니다. 그 문헌들에는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신화와 미신, 과장과 저속한 진술들이 나와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경을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헌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중요한 증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욥기가 기록된 시대에 벌써 지구가 하나의 구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음은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성경은 결코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욥기 26장 7절을 보면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욥기가 고대 시대에 생겨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라면(아마도 그럴 것입니다)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이 어떻게 알려졌을까?'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생각하거나 상상해 내었을까?' 그것은 분면 하나님 자신이 계신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최신 정보요 현대 과학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구를 구로 묘사합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실들이 우리 앞에 제시될 때 그 사실들을 피하지 않도록 대단히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몽매주의(obscurantism)라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결코 어떤 사실이 우리를 곤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예를 들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실제로 지층들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안에 있는 화석들까지 창조하셨다고 말함으로써 창세기 기사를 변호하려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시도는 성경의 전체 입장을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현실을 외면하고 무슨 말을 듣더라도 나는 이것만 주장할 거야!"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 누군가 여러분에게 다가와 '진화'라는 말로 살랑거리기 시작하거든 이렇게 묻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은 진화론 중 어느 분파를 믿는 분인가요?" 십중팔구 그 사람은 진화론에 하나 이상의 이론이 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될 것입니다.....과학자들은 냉각되기 시작한 큰 행성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그 행성이 어디에서 왔단 말입니까? 원시 점액질이나 원형질이라는 말도 사용하지만 그것들은 어디서 나타났습니까?...모두 이런 식입니다. 궁극적 기원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왜 미분화된 점액질 혹은 원형질이 더 복잡해지고 복잡적인 형태로 변화하는가?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키도록 만들었는가?" 그들은 모릅니다..변화에 대해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왜 변화는 언제나 발전적인 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지는 더더욱 설명하지 못합니다. .

지질학자들은 화석류로부터 얻은 증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화석들이 종의 불변성을 보여 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종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화석은 새로운 종의 등장은 언제나 갑작스러웠다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새로운 종은 점진적으로 변화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완전한 형태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화석에 대해 말씀드릴 세 번째 요점은 소위 '빠진 고리'에 대한 증거가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한 종이 다른 종으로 거의 감지하지 못할 만큼 점진적으로 변했다면 중간 단계의 증거가 지층 내에 남아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지만 그런 증거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3. 섭리

1. 섭리 교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1) 현재 세상의 정세로 인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2) 특별 섭리에 대한 잘못된 주장은 섭리 교리에 대한 오해로부터 발생한다

(3) 소위 '과학적 견해'는 섭리를 부정한다

(4) 섭리가 없다면 기도의 응답을 기대할 수 없다


2. 섭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섭리의 교리는 불가해한 교리다

(2) 성경은 하나님이 만물을 통제하고 계신다고 말한다

(3) 성경의 직접적 진술, 예언, 기도, 기적을 통해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4) 섭리의 세 가지 요소

(5) 섭리의 목적

(6) 섭리가 작용하는 영역

(7) 기적


3. 사람들이 섭리 교리에 대해 갖는 어려움

(1) 특별 섭리를 인정할 수 없다

(2) 하나님의 섭리와 죄는 어떤 관계인가


4. 섭리 교리의 두 가지 권면

(1) 섭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것임을 알라

(2) 어떤 사건을 특별 섭리라고 주장할 때는 신중히 생각하라


- 섭리는 창조주가 자신의 모든 피조물을 유지하시는 신적 에너지의 끊임없는 실행으로서,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 안에서 작용하고 있고, 모든 것을 정해진목적을 향해 가도록 인도한다.


14. 사람의 창조

1. 사람 창조의 독특성

(1) 삼위 하나님의 협의가 있었다

(2)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3) 사람의 구성 요소는 독특하다

(4) 사람에게는 높은 지위가 부여되었다


2. 진화론

(1) 성경은 사람의 차아조 전에 삼위의 협의가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진화를 부정한다

(2) 성경은 사람이 다른 생물이 아닌 흙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말함으로써 진화를 부정한다

(3) 성경은 사람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본질적인특징들이 있다고 말한다

(4) 성경의 타락 교리는 진화론의 가르침과 정반대다

(5) 유신론적 진화론 역시 비성경적이다

(6) 성경은 인류가 하나라고 말한다


3.사람의 구성적 본질

(1) 이분설과 삼분설

(2) 육체와 영혼의 관계

(3) 영혼의 기원


- 사람은 동물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사람에게는 자의식과 도덕적 자유, 추상적 사고를 할 능력, 종교를 갖고 예배할 능력이 있다.


- 진화의 과정은 항상 상향적이라고 말한다, 원시적, 단순한 것에서 고도로 조직화되고 복잡한 것으로 완벽함을 향하여 끝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 진화론은 사람이 짐승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출발했으나 점점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 발전하여 결국에는 완벽함에 이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정반대로 말한다. 성경은 사람이 꼭대기에서 출발한 후 거기에서 떨어졌다고 가르친다. (타락교리)


15.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1. 이 문제를 고찰해야 하는 이유

(1) 성경이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말한다

(2)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교리가 있어야만 설명할 수 있는 다른 교리들이 있다

(3)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게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접촉점이다


2.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일반적 원칙

(1)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존재다

(2) 하나님의 형상은 타락 이후에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3) 중생은 타락 이전 상태로의 회복이 아니다

(4) 최초의 사람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형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같지 않다

(5) 하나님 형상의 두 가지 요소


3. 사람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의 구체적 모습

(1) 본질적 자아의 불가시성과 불멸성

(2) 영혼의 활동들

(3) 지적, 도덕적 완전함

(4) 몸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

(5)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과 통치권

(6) 하나님 형상의 본질적 요소와 비본질적 요소


4. 사람의 원래 상태

(1) 아딤의 상태

(2) 최초의 사람에게 주어진 두 가지 가능성



16.타락

1.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들

(1) 이원론

(2) 진화론적 설명

(3) 기타 이론들


2. 사람과 세상의 현 상태에 대한 창세가 3장의 설명

(1) 창세기 3장의 역사성

(2) 타락의 원인과 단계

(3) 타락의 결과


- 이원론(dualism) 기독교 시대 이전까지 올라가는 오래 된 이론, 인생에는 선의 원리와 악의 원리라고 하는 두 개의 똑같이 중대한 원리들이 있다고 말함.


17. 아담의 후손과 원죄

1. 타락의 즉각적 결과 (16장에서 계속)


2. 타락이 아담의 후손들에게 끼친 영향-죄의 보편성

(1) 죄의 보편성에 대한 잘못된 설명들

(2) 죄의 보편성을 확증하는 성경 구절들

(3) 죄란 무엇인가

(4) 죄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이론

(5) 원죄의 교리


18. 원오명

1. 원오염의 의미

(1) 원오염이란 원의를 잃어버린 것을 말한다

(2) 원오염에 대해 주의해야 할 사항

2 오염의 표현

(1) 전적 부패 (2) 전적 무능



19. 구속:하나남의 영원한 계획

1. 지금까지의 결론

2.구속 교리의 개관

(1) 구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2) 구속은 전적으로 은혜로 말미암는다

(3) 구속은 창세전에 계획되었다

(4) 구속은 삼위 하나님의 협의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다

(5) 구속은 확실하고 완벽한 계획이다

(6) 구속의 계획은 반드시 성취된다

(7) 구속 계획은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에게 적용된다

(8) 구속 계획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9) 구속의 계획은 언약을 통해 인류에게 계시되었다



20. 구약에 나타난 은혜의 언약

1. 언약

(1) 하나님과 사람이 맺은 언약의 독특성

(20 은혜의 언약


2. 구약에 계시된 은혜의 언약

(1) 원복음

(*창세기 3장 15절_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 뱀은 하와를 미혹시켜, 친밀한 사이가 되었고 여자는 마귀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마귀가 아닌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하심)

- 하나님은 원수와 대항해서 싸우는 이 싸움에서 사람 편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 하심. (후손에게도)

- 하나님이 그 싸움은 여자와 그녀의 후손과 마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서도 일어난다고 말씀하심, 인류는 여기에서 두 종류로 나뉩니다.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했으며, 마귀의 자녀이자 후손임. 그래서 인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후손, 마귀의 후손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들 사이에 싸움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창세기 3장 15절에 나와 있다.

- 하나님과 하나님의 길이 승리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져있다.


(2) 노아와 맺은 언약

- 물로써 모든 땅과 모든 생물을 멸하는 일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약속

- 은혜의 언약은 창세기 3장 15절에 어렴풋이 나타나 있음. 이 때의 언약과 노아와 맺은 언약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단지 몇 가지 보충적인 약속과 명령을 제시, 궁극적인 의미에서 볼 때 노아와 맺은 언약은 새로운 언약이 아니라 일시적인 법령이었음,특별 은혜와 구별하여 일반 은혜라고 부름.


(3)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 여기서 처음으로, 어느 정도 분명하게 일종의 교회가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구별되기 시작.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 만들어지는 구별.

-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이 창세기 3장 15절에 어렴풋이 보여주셨던 것을 명백하게 표현한, 위대하고 분명한 최초의 약속



(4)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

- 민족적 언약, 이 떄부터 교회와 민족은 하나가 되었다.

- 행위 언약을 맺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심지어 낙원에서도 실패했던 사람에게, 어떤 일들을 행하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입니까? 율법을 주신 것은 행위 언약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였음, -

- 이 율법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보여 주고,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죄사하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 율법의 수여와 함께 모세를 통해 맺은 언약은 결코 은혜의 언약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첫번째 목적 : 죄의식을 증가시키기 위해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롬5:20)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

두번째 목적 :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3:24


- 율법의 요점 : 일종의 선생, 가정 교사의 역할을 하여 우리를 인도하기 위함,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줌, 율법 자체가 구원의 수단은 아님



21. 신약에 나타난 은혜의 언약

1 은혜 언약의 세 새대

(1) 은혜 언약이 옛 세대와 새 세대에 동일하다는 증거

(2) 옛 세대와 세 세대의 차이


2. 은혜 언약의 당사자

(1) 우리의 대표로 언약에 참가하신 성자

(2) 언약의 당사자에게 요구되는 조건


-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성경의 다른 부분들은 이 여자의 후손이 다름 아닌 주 예수이심을 증거합니다.

요한복음 5:39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6절 :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한복음 8:56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22. 주 예수 그리스도

1.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중요성

(1) 기독교 신앙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신앙이다

(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진술

(1)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과 약속의 성취

(2)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성경적 이유


3. 성육신 교리의 개요


23. 성육신

1. 성육신 교리의 요점

1) 성육신 교리는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2) 성육신은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가 육신이 되신 것이다

 :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삼위일체는 믿는 우리로서는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께서 육신이 되시어 사람으로 나타나셨다고 말해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가 취하신 것은 진정한 육체였다ㅜ

4) 성육신에 의해 새로운 인격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 인간의 본성을 입으신 것이다

5) 성육신에 의해 성자의 인격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6) 성육신은 성자가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7) 성육신에서 성자는 모양이 아닌 진정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8) 성육신에서 성자는 완전한 인성을 취하셨다

9)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취한 것이다


2 동정녀 탄생

1) 동정녀 탄생 교리에 접근하는 자세

2) 동정녀 탄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3) 동정녀 탄생 교리의 의미 


 

24.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증거

1.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증거

1)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여진 신적 이름들

2)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려진 신적 속성들

3)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직무들

4) 여호와께서 사용한 용어들을 예수님께도 적용함

5)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이 연결되는 방식

6) 예수 그리스도께 신적 예배가 돌려짐

7) 주님 자신의 자의식과 신성에 대한 주장들

8) 동정녀 탄생과 부활


2.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증거

1) 동정녀 탄생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

3) 육체적 본성을 지니심

4) 성장과 발달을 경험하심

5) 지상에서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으셨음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사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3:32)

6) 육체적 제한을 겪으심

7) 시험을 받으심

8) 기도하셔야 했음

9) 성령으로부터 능력을 받으셔야 했음

10) 하나님을 '내 하나님' 이라고 부르심

11) 예수님이 모든 면에서 사람이셨다는 성경의 주장들


3. 죄 없으신 참 사람 



-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여진 특별한 신적 이름들 

: 하나님의 아들 (40번) 

: 하나님의 독생자  

: 처음이요 마지막, 알파와 옴가 

: 거룩한 자 

: 주(the Lor) 

: 영광의 주 

: 하나님 (도마,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8) 

: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디도서 2:13) 


25. 신인:교리 

1. 성부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 

2. 신인 교리 

 1) 신인 교리에 대한 오류들

 2) 예수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지닌 한 인격이심

 3) 신성과 인성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3. 신인 교리의 신비

1) 신인 교리는 이성의 범주를 벗어난다

2) 신인 교리를 설명하는 유추들

3) 빌립보서 2장 5~8절을 통해 본 신인 교리

4) 신인 교리의 핵심

5) 신인 교리는 놀라운 구원의 신비다 



26. 선지자이신 그리스도 

1.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1)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화해와 회복 사역

2)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무 

 : 선지자, 제사장, 왕 


2.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1) 선지자의 역할

2)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에 대한 성경의 증거

3) 주님이 선지자적 기능을 수행하시는 방법

4) 이 교리의 의의 



27.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1. 제사장의 직무

1) 교리의 중요성

2) 성경이 말하는 제사장의 직무 - 화목과 중재

3) 예물과 제사의 기능


2.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1) 구약의 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

2) 예수의 대제사장 되심의 증거

3) 백성을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



28. 속죄

1.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

1) 십자가 사건의 중요성

2) 십자가와 관련된 잘못된 개념들에 대한 반론

3) 십자가와 구원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


- 복음서의 기자들이 성령의 인도와 지도 아래 복음서를 기록할 때, 그들은 자기들이 강조하는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상기시킨 것처럼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잇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 주님을 죽이기로 모의한 관원들은 '명절(명절기간)에는 하지 말자' 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주님을 성금요일에 못 박지 않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주님은 바로 그 날에 못박히셨습니다. 명절 기간에는 아무도 사형에 처하지 않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었습니다. 헤롯 왕은 베드로를 체포햇지만 그 날이 '무교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죽으실 것을 아셨을 뿐만 아니라 그 정확한 시점까지 아시고 사흘 전에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29. 대속

1. 대속적, 형벌적 속죄의 증거

1) 주님이 하신 사역의 의미를 보여 주는 구약의 제사

2)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신약 성경의 가르침

3) 주님의 사역을 묘사하는 단어들

4) 대속적 죽음의 의미를 강조하는 신약 성경의 용어들

5)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이 강조됨

6)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대속과 형벌적 속죄를 통해 얻어짐

7) 주님의 죽음을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는 사실 


- 성경의 가르침은 속죄에서 대속적 요소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강조.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의 대리인이 되어, 백성이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한 형벌을 대리적으로 받으셨다고 함 (성경적 속죄 교리에 대한 개혁주의적 견해),

두 가지 특징 1) 에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리자로서 행하셨음을 강조 2) 형벌적 측면, 


- 구약의 제사장이 바치던 제사의 기능

 1) 번죄와 속죄제의 목적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 

2) 이 화목은 죄책의 속죄에 의해 확보되었다는 것. 

3) 속죄가 희생제물이 대리 형벌을 받음으로써 유효하게 되었다는 것  

4) 속죄제와 번제의 효과는 범죄자가 용서받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 화목 제물 : 노여움을 달래는 행위, 노여움을 달래는 수단 


30. 속죄의 필요성 

1. 대속적, 형벌적 속죄의 증거 

1) 십자가의 죽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음을 강조하는 성경 구절들

2) 보조적 논증들

3) 반론과 답변들


2. 속죄교리의 핵심

1) 예수님의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

2)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에게 전가된 의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어떻게 하나님이 동시에 의로우면서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실 수 있습니까?....순결하셔서 악과 죄는 바라보실 수도 없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를 용서하시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영원토록 의로우신 성품을 유지하실 수 있습니까?  

사도가 제시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에서 자기 아들에게 하신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을 보이시는 방법으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여기에 대해서는 오직 한 가지 설명만 가능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안에서 죄를 벌하셨기 때문에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전히 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죄에 대하여 행하겠다고 하신 그대로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대속자에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고, "예수 믿는" 우리를 의롭다 하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논지는 이것이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이 본문만 있다 하더라도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성품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고, 온 세상 사람들 뿐 아니라 하늘의 통치자들과 권세들 앞에서, 심지어는 마귀와 모든 지옥의 거주자들 앞에서까지 정당함을 입 증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영원토록 공의로우심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예수 믿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심오한 말씀입니까? 



 -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교리를 믿는다면, 죄는 분명 벌을 받아야 합니다.형벌적 요소가 개입할 수밖에 없고, 대속의 필요성이 뒤따라옵니다. 또난 하나님의 율법의 엄위함과 불변성에 대한 논증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슴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 충분하다고 말하는 논증도 있습니다...'우리는 대속이 없이도, 아무런 처벌이 없이도 서로를 용서해 준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그와 같이 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큰 사랑을 갖고 계신 하나님은 훨씬 더 쉽게 용서하실 수 있음이 분명하다."....만일 하나님이 오직 사랑이시기만 한다면 이 논증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빛이시고,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의로우십니다.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의 경우에 비추어 하나님을 판단하는 그런 논증보다 더 큰 오류는 없습니다....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와 같은 주장을 합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사살이라면 하나님에게는 얼마나 더 그럴까라고 그들은 말합니다....실상 우리는 죄 가운데 있으며 우리의 모든 생각은 잘못되어 있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사고에 비추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참으로 딱하게 그지없는 상황입니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상적이고, 엉성하고, 불공정하고, 불의한 개념을 영원하신 하나님께 적용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의험한 시도입니다. 


31. 승리자 그리스도

1. 십자가에서 이루신 승리

1) 이 가르침의 배경

2) 사탄을 정복하신 주님

3) 죽음을 정복하신 주님

4) 죄를 정복하신 주님


2. 주님의 사역의 진정한 결과

1)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일어난 변화

2) 천국에 일어난 변화


3. 주님의 등동적 사역의 의의


32. 새 언약의 복들

1) 피 흘림을 통해 비준된 새 언약

2) 새 언약의 복들



-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셨는지 의심하는 것도 겸손의 표시나 성도다움의 표시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이며 믿음의 부족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죄가 사해졌음을 확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만큼 감수성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노력은 결코 다시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죄가 사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 그리고 복음의 경이로움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확신합니까? 당신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으며,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이시며,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고 거룩한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니까?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만일 지금까지 그것을 알지 못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하십시오. 당신의 불신과 무지를 고백하되 진리를 믿고 받아들여 진리대로 행하십시오. 믿음 가운데 주께 나아가십시오. 느낌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말씀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느낌은 따라올 것입니다. 마귀가 여러분에게서 기쁨과 확신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 부여한 자리에 굳게 서십시오. 하나님께 나아가 이 모든 일에 감사드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일에 대해 믿음으로 감사드리면 감사드릴수록 더 많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며, 그 안에 나타난 사랑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33. 왕이신 그리스도

1. 십자가가 주는 일반적 복들

1) 옛 세대의 사라들, 불신자들에게 미치는 십자가의 복

2) 천사들에게 주어지는 십자가의 복

3) 십자가로 인해 일어난 우주적 결과


2.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

1) 성육신 하신 주님이 받은 메시아적 영광

2)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신 주님

3) 교회에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주님


3. 왕이신 그리스도

1) 중보적 왕권

2) 그리스도의 나라




마틴로이드존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1. 교리 공부의 목적과 방법


1. 성경 교리란 무엇인가

(1) 성경은 일반 세계사가 아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역사도 아니다

(3) 성경은 거대한 구속 이야기다.


2. 어떻게 성경 교리를 공부할 것인가

(1) 교리 공부는 신학 공부와 다르다

(2) 교리 공부는 변증학과 다르다.


3. 왜 우리는 성경 교리를 공부해야 하는가

(1) 성경이 교리를 말하고 있다

(2) 교리를 공부하지 않고 성경은 연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3) 교회는 수십 세기 동안 필수적으로 성경 교리를 강조했다

(4) 성경 교리 공부의 목표는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것이다.


- 신학과 관련해서 한 가지 위험이 있음을 꼭 말하고 싶습니다. 철학과 사색, 그리고 당신 자신의 생각과 인간의 이성을 도입하는 순간, 당신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때로 위험할 수도 있는 어떤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입장은 신명기 29장 29절의 입장입니다. "감추어진 일[궁극적인 설명]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죄의 교리를 다룰 때, 누군가 '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에 대해 알기 원한다면 저는 역시 답해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추측할 수 있고 추론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성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은밀한 일들이 아닌 계시된 일들에만 우리 자신을 국한시켜야 합니다.


- 교리를 공부하지 않고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우리 주님 당신 유대인들의 진짜 문제는 그들이 문자에만 얽매여서 그 정신은 결코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교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말(words)을 안다는 데 만족하여 말씀(word)은 결코 깨닫지 못했습니다.


- 궁극적으로  공부는 하나님을 참으로 알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에 들어가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길이 얼마나 경이로운가를 어느 정도 알게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렇습니다. 계속 성경을 읽고 연구하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세부적인 것들에 매여 헤매지 마십시오. 이 위대하고도 강력한, 교리의 최고봉들을 뽑아 내어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합시다.


2. 계시


1. 하나님의 대한 의식


2. 하나님을 찾는 두 가지 방법

(1) 인간의 노력과 추구에 의지하는 방법

(2) 계시에 의존하는 방법


3. 계시의 방법

(1) 일반 계시

(2) 특별 계시


4. 성경에 나타난 특별 계시의 방법

(1) 신적 현현

(2) 언약의 사자

(3) 직접적인 말씀

(4) 기적과 표적과 기사

(5) 꿈과 환상

(6) 영감


5. 특별 계시를 통해 알려진 하나님의 구원

(1)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적 행동을 보여 준다

(2) 구원에 대한 계시는 오직 성경에만 주어졌다


하나님을 찾는 두 가지 방법

- 내적인 빛  (당신은 그저 자신을 포기하고 이 빛과 빛의 인도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 이성과 지혜와 이해에 근거한 방법

- 역사를 살펴보고 역사의 과정을 추론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이를 수 있다는 말

- 순전한 추론과정에 몰입하는 것

- 도덕적 논증

--> 위와 같은 것들이 바로 많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법들임을 상기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대답은 이 방법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말로 표현합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고전1:21)


아무도 위와 같은 방법들을 따라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 자신의 성품, 그분의 무한하심, 그분의 절대적인 성품들과 자질들, 그리고 그분의 완전한 거룩하심. 이 모든 성품들 자체가 본질적으로 이성이나 직관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도록 만듭니다.

2. 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특성과 본성을 덧붙여 생각하면,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인간의 정신은 너무 작기 때문에 하나님을 헤아릴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그리고 타락으로 말미암마 인간의 모든 기능과 능력이 죄와 자연적인 악의에 영향받았다는 것을 이해하면 다시 한 번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언제나 이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이미 싪패로 입증된 진부한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자신의 은혜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길 기뻐하실 때에만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소망할 수 있으며, 기독교는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음을 가르치고 있다는 이 근본 원리를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이성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으로는, 아무리 잘되어 봐야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만 도달할 수 있을 뿐이라고 바울은 주장합니다.


-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장막을 걷고 그분 자신에 대한, 그리고 그분의 위대하고 은혜로운 목적들에 대한 통찰과 지식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주제입니다.

이 시점에서 한 마디 첨부하자면, 성경을 공부할 때 이런 생각, 즉 이런 계시의 개념을 항상 명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길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위대한 목적과 의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내가 보든 보지 못하든 그 계시는 여기 있습니다. 계시는 주어졌습니다. 이제 제기되는 문제는 내가 이 책을 신뢰할 수 있는 가, 이 책이 말하고 주장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가, 이 책의 주장들을 믿고 그 권위에 나 자신을 복종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3. 성경의 권위


1. 계시와 영감


2. 영감의 의미

(1) 영감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

(2) 성경의 영감은 축자적 영감


3. 축자 영감의 증거

(1) 성경은 영감에 대해 명확한 주장을 한다

(2) 축자 영감을 지지하는 결정적 구절들

(3) 성경이 성경을 대하는 태도

(4) 성경의 일관성

(5) 가장 중대한 증거 -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6) 성령의 조명 외에 영감성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 저는 성경 자체가 축자 영감(verbal inspiration)을 주장한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축자 영감이란 그저 생각이나 개념들만 영감된 것이 아니라, 실제 기록이 특정한 단어들에 이르기까지 다 영감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단순히 내용에서만 옳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단어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 성경이 하나님에 의해 축자적으로 영감 되었다고 말할 때, 이 말이 성경을 기계적으로 받아썼다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저자들 간에 문체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영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저자가 기록하는 가운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통제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축자 영감이 의미하는 바는 성령께서 저자들을 심지어는 특정한 단어를 선택하는 일에서조차 이와 같이 지배하고 통제하고 인도하여, 오류를 범하는 것을 막으시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결과를 산출해내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 그들은 그들이 갑자기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시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언제 그것이 임했는지를 정확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았고, 사명을 받았고, 그리고 말씀이 임했습니다.


-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이자 대단히 귀중한 논거는 어떤 선지자들은 때로 그들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대단히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 더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은 선지자 자신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고 말하는 다니엘서 12장 8절의 진술을 생각해 봅시다.


- 육십육 권의 성경은 적어도 일천육백 년이 넘는 기간에 사십 명 이상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전체에는 오직 한 가지 유형의 교리와 한 가지 유형의 도덕만이 존재합니다. 이 것을 달리 설명 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 구약에는 한 가지 정신, 즉 메시아의 소망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시대마다 사람들은 달라지지만 메시아적 소망은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에도 오직 하나의 위대한 주제가 있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입니다. 모든 것이 그를 가리켜 보이고 있고 모든 것이 그에제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자들이 다양하다는 것은 아무런 차이도 만들지 않습니다. 오직 이 하나의 위대한 주제만이 존재합니다.


- 만일 여러분이 성경의 권위와 축자 영감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주님 자신에 대해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 아직까지도 몇 가지 난점이 남아있습니다만, 그것들이 결코 교리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숫자의 문제이거나 아니면 아마도 필사자나 번역가의 실수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중대하고 본질적인 교리의 이해를 어렵게 하는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4. 우리는 어떻게 교리를 발견하는가

1. 왜 이 주제를 살펴보아야 하는가


2. 이성, 오성, 지성의 역할

(1) 우리의 최종적 권위는 성경이다.

(2) 우리는 성경에 완전하게 복종해야 한다

(3) 자신의 논리와 체계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4) 이성, 오성, 지성의 역할에 대한 결론


3. 교리에 도달하는 방법

(1) 교리를 발견해 나갈 때 지켜야 할 일반적 규칙

(2) 실제적인 지침


4. 교리에 대한 의견의 차이

(1) 의견차가 발생하는 이유

(2) 성경에는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3) 반드시 알아야 하는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교리도 존재한다


- 우리는 성경에 완전하게 복종시켜야만 합니다. 이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과 그 교리를 읽을 때는 스스로에게 지금 나는 나의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영역에 들어가고 있노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분명히 나의 이해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계시라는 말 자체가 분명히 이와 같은 사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 만일 내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 우리의 위대한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의 말, 곧 이성의 최고의 업적은 이성에는 끝과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우리의 이성은 우리를 계시의 영역에 들어갈 때까지 이끌어 주며, 거기에서 하나님은 자비 가운데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 성경에 자신을 완전히 복종시킨다는 말은 우리가 진리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진리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에 동의할 뿐 아니라, 어떤 교리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성경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그 교리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 믿음이란, 오직 성경에 있는 내용만으로 만족하기로 매우 신중하게 결심하고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참된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 보기만 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질문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걸 모르겠어요, 저걸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믿음은 우리가 이 성경 앞에서 입을 닫고 기꺼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계시하고자 원하시는 모든 것, 내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성경에 계시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해도 만족합니다." 예를 들면 악의 문제-그것이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왔는가?-를 토론할 때 이 점을 염두에 두도록 하십시오. 성경에서는 왜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셨는지 말해 주지 않기 때문에, 만일 여러분이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의문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나는 몰라요. 성경이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성경이 나에게 말해 주는 것 이상으로는 아는 바가 없어요." 이것이 한가지 아주 중요한 원칙입니다.


- 철학과 계시를 뒤섞으려는 끊임없는 유혹을 온 힘을 다해 피해야만 합니다......사람들이 성경의 특정한 진술을 접하게 되었을 떄 "나는 그것을 이해 할 수는 없지만 기꺼이 믿겠습니다." 라고 말하기보다는,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일 수 있단 말이요?"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 순간 이 사람들은 철학자로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복음주의자들인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일관되지 않게 행동하는 잘못을 너무 자주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현대주의자와 논쟁을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럴 수가! 그는 기적을 믿지 않고,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더군요. 자신이 기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예요" 이런 식으로 비난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때로 저 위대한 용어들, 즉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예정하사"라는 말이나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택하심을 받은"과 같은 말을 보게 될 때, 우리 복음주의자들도 "그 말이 맞다면 도대체 하나님이 어떻게 공평하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라는 식의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현대주의자 친구가 기적에 대해 취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행동입니다....하나님의 진리이고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이해하든 못하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예를 들자면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로마카톨릭에 대해 하는 답변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에게 와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하고,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용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데요."

"물론 그러시겠죠" 그들은 대답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의 전통이 있답니다. 계시는 신약 정경이 완성될 때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진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아 왔습니다. 사도직과 사도적 깨달음은 계속 이어져 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와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이 성경과 대당한 권위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확고하고 결연하게 "아니요!"라고 말해야 합니다....그것이 성경으로부터 입증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가르침을 거부합니다.


- 성경이 어떤 사람들을 향해 씌어진 것인지 상기해 보지 않은 채 성경 연구에 착수하면 종종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 서신들이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의 학생 또는 교리 교수를 향해 씌어진 것이 아니라 노예들과 평민들, 보통 사람들에게 씌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쓸모 없는 주석서들이나 골칫거리들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등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씌어진 것이었습니다....바울이 이 서신서들을 썼을 때, 그는 그 글을 받는 사람들이 당연히 자기의 글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이것이 바로 선조들이 성경의 명료성이란 말을 사용했을 때 의미했던 바입니다.


- 사도 요한은 우리가 기름부음을 받았기 대문에 그런 의미에서의 가르침은 필요치 않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그래서 우리는 보통 사람들은 성경을 읽기에 적합하지 않고 오직 카톨릭 교회만이 성경을 바르게 해설할 수 있다고 하는 로마카톨릭의 주장을 거부합니다.


- 때로는 성경 구절들로부터 교리를 추론하는 일이 상당히 간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 구절들을 읽고는 "이 구절들은 분명 이런 뜻이로군"하고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연역법, 즉 의미를 끌어내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귀납법이라고 부르는 또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예로 들어 봅시다. 성경 어디에도 암시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삼위일체 교리가 진술 된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대해 언급한 구절들을 접하게 되면 여러분은 스스로 이 구절들을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세 위격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의 증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연역법이 아니라 귀납법입니다. 이것은 특정한 구절들로부터 교리를 세워 나가는 방법입니다.


- 성경은 하나의 위대한 메시지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완벽한 전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모순을 일으키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사의 큰 인물들이 이 간단한 규칙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주요한 이단이 되어 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시면 놀라실 겁니다.


교리에 대한 의견의 차이

- 자신의 철학을 끌어 들이거나, 단 하나의 본문, 혹은 본문의 절반에만 근거해 교리를 만들어 내느 등의 잘못. -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이론을 이미 가지고 있는 채로 출발하려는 경향이 있고, 시작 후에는 성경을 자신의 이론에 끼워 맞추려 함

- 자유의지나 그 비슷한 것들에 대해 특정한 이론을 가지고 출발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성경의 교리들에 대해서는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 확실치 않은 세부 사항에 대해 자신들만의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경우

- 명백히 상징적인 의도로 씌어진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길 고집하는 경우


- 성경에는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어떤 문제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그 경건성이나 능력이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일치할 수도 없는 그런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문제를 만났을  때는 분명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그런 문제들을 입증할 수 없으며 장차 우리가 영광에 이르러 모든 것이 명백하고 분명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부분적으로 알고 이해합니다. 우리의 지식을 완전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우리가 완전하게 알고 있고, 또 알아야만 하는 확실한 교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길에 필수적인 교리들입니다....이 문제에 이르러서는 경건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종종 의견이 나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이런 일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내가 "나는 이것은 믿는데 저것은 믿을 수가 없어요"라고 얘기하면 상대방은 말하기를 "좋아요, 우리 둘 다 구원의 길에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한에는 괜찮습니다" 라고 할 것입니다......하지만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문자적, 육체적인 부활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떤 논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교리는 최종적이며 또한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이거나 절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상대의 말을 들어 줍시다. 관용하도록 합시다. 우리에게 이러한 문제를 입증한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위대한 구원을 함께 누리며, 장차 감추어진 일들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주님이 우리를 아시듯 우리가 알게 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시다.


5. 하나님의 존재와 본성

1. 하나님에 대한 교리의 중요성


2. 하나님의 존재

(1)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선언한다.

(2)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증들


3.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

(1) 우리의 최고의 필요이자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것

(2)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능한가


4. 하나님의 본성

(1) 이 주제에 접근하는 합당한 자세

(2) 무한하심

(3) 영이심

(4) 인격이심

(5) 통일체이심


-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선언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무언가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당연한 일로 간주합니다. 성경의 첫 번째 구절을 살펴봅시다. 창세기는 절대로 "자, 다음 증거들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가 존재하셨으므로 그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확증한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단지 그분의 존재를 진술할 뿐입니다.


- 우주론적 논증, 목적론적 논증, 도덕적 논증......그런데 성경이 이런 논증들에 대해 가르쳐 주는 바는 이러한 논증을 통해서는 결코 믿음이 생겨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들은 소극적 의미에서 유용하기는 하지만 결코 믿음으로 이끌지는 못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믿음이 없이는, 믿음으로 이끄는 성령님의 내적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이 사실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주시는 선물인 믿음의 선물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의 최고의 필요는 언제나 하나님을 아는 것이어야 하며,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능한가?'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믿지만 그분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르침은 약 이백 년 전에 매우 유행했습니다. 그것은 이신론(desism)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에도 그 가르침을 믿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들은 시계 제작자가 시계를 만들듯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계 태엽을 감아 내려놓고는 더 이상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 합니다.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기대하는 다른 어떤 축복들보다도 더 중요한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추구, 모든 예배, 모든 노력의 목표가 트별한 체험이나 특정한 복을 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즉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분, 복이 아니라 복 자체의 근원이자 샘이 되시는 분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우리의 최고선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목표이자 목적지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의 이 말씀은 팔복의 하나로서 다른 모든 것을 요약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우리가 갈망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며, 우리의 모든 노력의 이유도 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 우리가 용서받았음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죄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것도 옳은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은 완전히 정당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망들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것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전체적인 마음가짐은 대단히 그릇되고 부적절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문제의 대부분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소망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이 소망을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요?


- 하나님의 불가해성(incomprehensibility of God), 인간은 하나님을 최종적으로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 하나님은 최종적으로는 불가해한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을 부분적인 지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부분적인 것이라 해도 그것은 진정한 지식입니다. 비록 그것이 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지식은 진실한 지식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이끌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본성

(1) 무한성 (유한하지 않음)

요한계시록 4장 8절에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성은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곳에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반드시 이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신인동형론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것으로 인해 잘못을 범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 가운데 다가가고 있는 분이 바로 이 무한하시고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노력합시다.


(2)영적인 존재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에 대한 가장 놀라운 증거는 후에 살펴 볼 그분에 대한 또 하 나의 진리, 즉 그분의 편재하심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곳에, 그것도 같은 시간에 모든 곳에 계시다는 진리입니다.


(3) 인격성

범신론을 믿는 사람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6. 하나님의 절대적 인격의 속성들

1. 하나님의 속성들과 이름들

(1) 이 교리를 고찰하는 목적

(2) 이 교리에 접근하는 방법


2. 하나님의 속성

(1) 하나님의 속성의 의미

(2) 하나님의 인격적 속성과 도덕적 속성


3. 하나님의 인격적(비공유적)속성

(1) 영원과 불변성

(2) 편재성

(3) 전지하심

(4) 전능하심

(5) 절대적 복되심

(6) 영광


7.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

(1) 거룩하심 (2) 의로우심, 공의로우심 (3) 선하심과 사랑 (4) 신실하심


8. 하나님의 이름들과 성삼위일체

1. 하나님의 이름

(1) 이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2) 하나님의 이름들과 그 의미


2. 삼위일체

(1) 삼위일체 교리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2)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

(3)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거

(4) 세 위격의 관계


- 우리는 항상 교리와 그 실제적 목적, 이 두 가지를 모두 붙잡고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를 진정으로 소망합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에 대해 갖고 계신 계획에 우리를 복종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 성경에서 하나님께 돌려진 몇 가지 이름들

(1) 엘 : 첫 번째, 최고라는 의미. 힘과,능력, 즉 강력함이라는 개념 전달

(2) 엘로힘 : 이 것은 복수 형태임, 강력한 분일 뿐 아니라 두려워해야 하는 분이라는 개념 전달, 하나님이 창조와 관련하여 자신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시는 이름

(3) 엘룐 : 높고 고귀한 분이라는 의미.

(4) 아도나이 : 전능하신 주, 만물이 복종하며 모든 사람이 섬기는 통치자라는 의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말씀하실 때 흔히 사용하신 이름.


(*지금까지 이름은 하나님을 위대하고, 높고, 강력하고, 영광 가운데 높이 들리우신 초워러적 하나님으로 묘사)


(5) 샤다이 : 하나님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묘사. 하나님의 권능만이 아니라, 특별히 그분의 은혜와 자비, 그리고 사람들과 맺으시는 관계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제궈너 강조. (우리의 식량을 위해 바람과 비와 눈을 통제하시는 하나님)

(6) 야훼 : 성경이 이야기 하는 최고의 이름. 하나님이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묘사하신다는 것을 의미.

언약을 맺으실 때 하나님은 통상적으로 자신을 그 위대한 이름 여호와로 묘사합니다.


여호와에 수식어가 첨가된 경우

(6-1) 여호와 사바오트 "만군의 여호와" - 천사들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안전.

(6-2) 여호와 이레 :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

(6-3) 여호와 로페 : 치료하시는 여호와

(6-4) 여호와 닛시 : 여호와 나의 깃발

(6-5) 여호와 샬롬 : 여호와가 평강을 보내시며 여호와는 우리의 평강.

(6-6) 여호와 로에 : 여호와 나의 목자

(6-7) 여호와 치드케 : 여호와 우리의 의

(6-8) 여호와 삼마 :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삼위일체

- 우리는 성경의 계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이 교리입니다. 어떤 인간도 삼위일체의 교리를 생각해 낼 수는 없습니다. 이 교리는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다른 무언가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왔으며 자신들의 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삼위일체를 생각해 내지는 못했습니다.


- 이것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십 세기에 걸쳐 교회의 위대한 지성들이 이 문제로 씨름했고 설명해 내려 노력했지만, 그들 역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의 삼위일체

  "신성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 계시다. 이 셋은 하나님으로서, 본질상 동일하시고, 능력과 영광이 동등하시다."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꼐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성부가 하나님이신 것처럼 말씀도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두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신성만이 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시니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상기하십시오.


-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섬삼위일체의 교리를 부인하려 힘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세 위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위격만 있으며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시다. 하지만 그 한 하나님이 자신을 여러 다른 방식으로 계시하실 수 있다. 그분은 어떤 때는 자신을 성부로 계시하시고, 다른 때에는 자신을 성자로 계시하신다. 그리고 또다른 어떤 때는 자신을 성령으로 계시하신다." 그리고 나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인간적인 유추를 사용하려 애씁니다. 예를 들어 같은 사람이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설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이 세 가지 다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모든 것을 부인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양태들이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신성에는 세 위격이 있으십니다. 그 위격들은 서로를 언급합니다. 그리스도가 다른 위격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안의 다른 위격들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한 하나님이 계셔서 자신을 이같이 서로 다른 양태로 보여 주신다는 어떤 가르침도 거부합니다.

(*위격 ; 자유 의지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

*양태 : 사물이 존재하는 모양이나 형편, 모습, 상태)


- 구약 성경에는 신약 성경만큼 삼위일체 교리가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성자가 성육신 하시고 성령을 보내시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삼위일체의 교리가 완벽하고 분명한 형태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오신 이후에야 사람들이 이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했으며, 심지어 지금도 이것은 여전히 거룩하고 신비로우며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입니다.

하지만 구약에도 이 교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 엘로힘(복수 형태의 하나님의 이름).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창 3:22)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창 11:7)

: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이사야 6:8)


- 세 위격의 관계

: 그들은 영원히 공존하신다, 성자가 성자라고 불릴 때 그것은 그분이 성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다거나 조금이라도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타나시우스 신조

: 성부는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며, 성령 역시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신다. 성부는 주님이시고, 성자도 주님이시며, 성령 역시 주님이시다. 그러나 세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주님만 계신다. 기독교의 진리에 의해 각각의 위격 자체가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시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듯이, 그 동일한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세 하나님과 세주님이 계시다고 말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9.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1. 작정의 교리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

(1) 성경이 작정의 교리를 말하고 있다

(2) 작정의 교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3) 작정의 교리는 우리를 많은 오류로부터 구해 준다

(4) 작정의 교리는 커다란 위로를 준다


2. 작정의 교리에 접근하는 자세

(1)당파심을 버리고 접근해야 한다

(2) 철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3)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3. 작정 교리의 기본 명제들

(1)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변치 않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2)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결정한다

(3) 하나님의 모든 작정은 무조건적이고 주권적이다

(4) 하나님의 작정은 효력 있는 작정이다

(5)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의 본성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6) 하나님은 창세전에 구원을 작정하셨다

(7)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 만일 여러분이 "성경의 순서상 그리고 논래 전개상 다음에 어떤 주제가 다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많은 사람이 우리는 즉시 창조의 교리를 다루어야 한다고 대답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습니다....그렇게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기 때문에 옳은 일이 아닙니다.


- 창조의 교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성경이 그 문제를 언급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시는 일을 시작 하기 전에 어떤 일들을 생각하시고, 결심하셨으며,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이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실제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마음과 의도 속에서 몇 가지 사항이 결정되었으며, 그렇기 떄문에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명백한 연대기적(이런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순서이자 논리적 순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 혹은 방법에 대한 성경의 묘사를 흔히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eternal decrees of God)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무엇인가 행하시기 이전에 결심하시고 정하신 일들입니다.


- 우리는 주관적인 경험과 주관적인 구원에 너무 관심을 갖는 나머지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이 위대한 교리는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더욱 많이 알수록, 우리는 구분을 더 많이 예배할 것입니다.


- 개인적으로 이 특별한 교리만큼 저에게 커다란 위로를 주었던 것은 일찍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유한한 세상에 잠시 지나가는 미미한 피조물일 뿐인 나의 배후에 하나님 자신의 영원하신 작정이라고 하는 이 교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저에게 더 큰 위안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 이 교리를 고찰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편견들과 모든 종류의 당파심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당파심(party spirit)'이란 말은 우리 모든 사람은 특정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를 발견하는 일보다는 이미 믿어 왔다고 생각하는 일을 고수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부정문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이 주제에 철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철학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큰 저주입니다. 철학은 그 정의상 언제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철학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문제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 믿음은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즉각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기꺼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요. 나는 주어진 것은 모두 다 받아들이되 그 이상 알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계시하신 것으로 만족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는 서로 조화시킬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이율배반(antinomy)이라는 용어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율배반이 무엇일까요? 당신 스스로는 조화시킬 수 없는 두 개의 진리가 주어진 상황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결정적인 이율배반이 몇 가지 있으며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는 이들을 기꺼이 받아 들여야 합니다.


- 작정 교리의 기본 명제들

1.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의 피조물에 대해 변치 않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이것을 부정문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못해 하는 일이란 절대로 없다. 하나님의 활동들에 불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다른 형태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결코 후회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창조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구원에 대해, 이 세상의 모든 삶에 대해, 이 모든 것의 마지막과 궁극적 운명에 대해 명확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 그분이 일어나게 하신 모든 일은 그분 자신의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이며, 그 계획은 고정되어 있고, 확실하고, 변하지 않으며, 절대적입니다.


2. 하나님의 계획은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일과 사건들을 포괄하겨 결정한다

-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면, 자유롭고 자발적인 행위자들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행동들도 당연히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진술입니다.....사도바울은 이 문제의 개요를 매우 분명하게 기술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0-11)

-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우리는 제비를 행운과 우연의 문제로 간주하지 않습니까? 성경도 그렇게 인정하듯 제비를 뽑는 행위는 우리가 합니다. 하지만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작은 참새 한 마리가 죽어서 땅에 떨어집니다. 우리는 우연이라고, 그냥 벌어진 일이라고 말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 작은 참새 한 마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나니" 아주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도 하나님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로운 행위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잠언 21장 1절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으미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왕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마치 물을 통제하듯 그를 통제하고 계시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빌립보서 2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도,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악을 유발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악을 승인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한 행위자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허용하시며, 그분 자신의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악을 지배하십니다.

죄를 금하고 벌하는 도덕법을 정하시는 하나님의 작정이 또한 죄의 발생을 허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악에 한계를 설정하여 그 악이 벗어나지 못할 정확한 궤도와 이루게 될 결과를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도록 지배하십니다.


3. 하나님의 작정은 어떤 의미에서도 인간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무언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심지어 하나님이 미리 아시는 바 사람들이 앞으로 취할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무조건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 자신의 의지와 그분 자신의 거룩하심 외에는 어떤 것에도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삶에 원인과 결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조건적인 행동과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자연과 인생에는 원인과 결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교리가 말하는 것은 모든 원인과 결과, 자유로운 행동들은 하나님 자신의 작정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같이 특별한 방식으로 일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계획하신 결말이 확실하게, 그리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도록 정하셨으며, 그 무엇도 이것을 방해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다고 정하셨습니다.


-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언제나 "그 기쁘신 뜻대로"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무엇으로 인해 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 왜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행한 일 때문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임신조차 되기 전에, 하나님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도 그들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으로 주권적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게께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심지어 그렇게 생각하는 일조차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4. 하나님의 작정은 유효적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인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의 전능하시과 그분의 능하심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들은 결코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5. 하나님의 작정은 그분 자신의 최고로 지혜롭고, 자비하시고, 거룩한 본성과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 하나님의 작정은 자유로운 행위자들과 자유로운 행동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유를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궁극적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지배하십니다.....여러분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둘을 어떻게 조화시킵니까?" 저는 "저로서도 조화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성경이 두 가지 사실, 즉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자유로운 행위자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워너하신 작정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6. 사람들과 천사들의 구원, 특별히 그들 중 일부의 구원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이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 당신이 영광 가운데 들어가기가지는 궁극적인 이해를 보류해 두어야 합니다. 지금 이 곳, 시간 속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일관성이 있으심을 믿고, 하나님이 그의 영워너하신 작정과 창세전에 결정하신 일들에 대해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이 당신에 대해 결정하신 일들은 확실하고, 안전하고,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10. 선한천사들

1. 천사의 교리를 고찰하는 이유

2. 천사에 대한 일반적 사항들

(1) 천사는 피조된 존재다

(2) 천사는 영적인 몸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다

(3) 천사에게 성별이 있는가

(4) 천사는 죽지 않는다

(5) 천사는 사람보다 우월하다.

(6) 천사의 이름과 칭호

(7) 천사의 조직

3. 선한 천사들의 임무

(1) 일반적 임무 (2) 성도를 섬김-가장 큰 임무 (3) 심판

4. 천사의 교리를 탐구함으로써 얻는 유익


- 성경의 가르침으로 판단할 때, 천사들은 우리와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께 사용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시간 동안, 그들은 우리를 준비시키는 일을 돕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의 회심 이야기를 보면 고넬료가 어느 날 기도하고 있을 때 한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 나타나 그에게 말하자면 자신의 구원에 대한 '예고편'을 보여 주고 그의 구원이 실현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주었습니다.....여러분도 이와 같이 특이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배의 장소에 가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우연히 누구를 만나게 되는 그러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사들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어떻게 해서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고도 하나도 다치지 않고 나왔는지 기억하시니까? 그는 왕에게 놀라지 말라고 말하며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다"고 설명했습니다.


11. 마귀와 타락한 천사들

1. 이 교리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

2. 마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마귀를 지칭하는 이름들

(2) 마귀는 인격이다

(3) 마귀의 기원

(4) 마귀의 능력

(5) 마귀의 특성

(6) 마귀가 하는 일

(7) 우리는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


- 저는 종종 자신의 문제는 단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자나 정신분석가에게 보내졌던 사람들을 만나 왔습니다. 이 떄 치료의 핵심은 그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자신 및 자기의 개인적 죄와 실패의 탓으로 돌리던 일들이 사실은 성경에 마귀라고 묘사된 이 강력한 대적자의 탓일 뿐임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 마귀가 우리를 깨어나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우리를 잘못된 열심으로 가득 차게 해서 육적인 일과 영적인 일을 혼동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가장 열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원수의 영향을 최고로 받도록 만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성경이 마귀에 대해 두 번재로 가르쳐 주는 것은 그가 인격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현시대에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불신자들뿐 아니라 또한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악의 힘이나 악한 영향을 믿는다고, 혹은 우리 안에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음은 믿는다고 말하지만, 인격적인 마귀를 믿는 것은 대단히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비성경적인 태도입니다.


- 복음서의 우리 주님이 시험받으신 기사 자체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해 줍니다. 우리 주님의 시험이 어딘가 외부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에, 만일 누군가가 악에 대한 시험은 오직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우리 안에 어떤 능력이나 긍정적 특질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 주님이 받으신 시험에 대해서는 설명해 낼 방법이 없습니다.


- 사탄의 능력이 심지어는 천사장의 능력보다도 더 크다고 암시되어 있음을 발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유다서 9절에는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워너하노라 하였거늘"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장인 미가엘조차 마귀에게 비방하는 판견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 마귀의 특성 : 교만, 악의, 교활함, 거짓됨

- 하나님을 반대하는 모든 것, 그것이 마귀의 활동입니다.


마귀는 어떤 방법으로 이 일을 할까요?(불신자에게)

1) 불신자들이 진리에 눈이 멀게 한느 것

2) 사람들의 삶을 명령하고 통제하는 것


(신자에게)

1) 우리의 일과 활동을 방해한다.

2) 우리를 낙심시킨다

그는 우리의 정욕을 자극하고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언짢은 마음, 우리의 우울함, 우리의 절망감, 우리의 자포자기하는 마음 대부분은 그의 책임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생각에 파묻혀 스스로 자신의 약점, 실패, 무능력함 등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때는 언제든지 이것이 마귀로 인한 것임을 정말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마귀가 사람들이 자신을 들여다볼 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을 내향적으로 만들며, 그래서 우리 안에 이 모든 언짢고 우울한 기분을 만들어 낸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앞에서 상기시켰던 것처럼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합니다. 그는 질병에 걸리게 할 수 있습니다.....


- 마귀의 능력은 하나님 아래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야고보


- 두 측면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절대 가볍거나 경박해서는 안 됩니다. 결코 무모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대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대적이 강력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겁쟁이처럼 두려움 속에 우리의 삶을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12. 세상의 창조

1. 창조에 대한 일반 사항들

(1) 성경이 창조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주어진 설명은 정확하다.

(2) 하나님은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다

(3)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에 따른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동이었다

(4) 창세기에는 하나의 창조 기사만 기록되어 있다


2. 창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창조는 삼위 하나님의 역사다

(2) 시간은 창조와 함께 시작되었다

(3) 창조와 관련된 성경의 용어

(4)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의 관계


3 창조의 세부사항

(1) 창조의 날들

(2)"날"의 의미


4, 창조와 현대 과학

(1) 창조교리와 확증된 과학적 사실은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2) 창조와 진화의 문제


- 창조는 "태초에 이미 존재하던 재료를 사용함이 없어 보이는 우주와 보이지 않는 우주 전체를 만드시고 그리하여 하나님 자신과 구분되지만 항상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를 만드신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 (벌코프, Berkhof)라고 정의됩니다.


- 성경은 창조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창조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발생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다.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그분의 사랑 대문도 아니다. 그것은 그분의 뜻과 영광에 따른 자유로운 행동이었으며,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 성경이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사실들을 진술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대단히 놀랍습니다. 창세기를 생명 및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이집트와 바벨론 문헌의 기사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는 점이 종종 지적되어 왔습니다. 그 문헌들에는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신화와 미신, 과장과 저속한 진술들이 나와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경을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헌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중요한 증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욥기가 기록된 시대에 벌써 지구가 하나의 구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음은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성경은 결코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욥기 26장 7절을 보면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욥기가 고대 시대에 생겨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라면(아마도 그럴 것입니다)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이 어떻게 알려졌을까?'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생각하거나 상상해 내었을까?' 그것은 분면 하나님 자신이 계신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최신 정보요 현대 과학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구를 구로 묘사합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실들이 우리 앞에 제시될 때 그 사실들을 피하지 않도록 대단히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몽매주의(obscurantism)라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결코 어떤 사실이 우리를 곤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예를 들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실제로 지층들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안에 있는 화석들까지 창조하셨다고 말함으로써 창세기 기사를 변호하려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시도는 성경의 전체 입장을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현실을 외면하고 무슨 말을 듣더라도 나는 이것만 주장할 거야!"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 누군가 여러분에게 다가와 '진화'라는 말로 살랑거리기 시작하거든 이렇게 묻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은 진화론 중 어느 분파를 믿는 분인가요?" 십중팔구 그 사람은 진화론에 하나 이상의 이론이 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될 것입니다.....과학자들은 냉각되기 시작한 큰 행성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그 행성이 어디에서 왔단 말입니까? 원시 점액질이나 원형질이라는 말도 사용하지만 그것들은 어디서 나타났습니까?...모두 이런 식입니다. 궁극적 기원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왜 미분화된 점액질 혹은 원형질이 더 복잡해지고 복잡적인 형태로 변화하는가?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키도록 만들었는가?" 그들은 모릅니다..변화에 대해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왜 변화는 언제나 발전적인 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지는 더더욱 설명하지 못합니다. .

지질학자들은 화석류로부터 얻은 증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화석들이 종의 불변성을 보여 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종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화석은 새로운 종의 등장은 언제나 갑작스러웠다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새로운 종은 점진적으로 변화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완전한 형태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화석에 대해 말씀드릴 세 번째 요점은 소위 '빠진 고리'에 대한 증거가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한 종이 다른 종으로 거의 감지하지 못할 만큼 점진적으로 변했다면 중간 단계의 증거가 지층 내에 남아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지만 그런 증거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3. 섭리

1. 섭리 교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1) 현재 세상의 정세로 인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2) 특별 섭리에 대한 잘못된 주장은 섭리 교리에 대한 오해로부터 발생한다

(3) 소위 '과학적 견해'는 섭리를 부정한다

(4) 섭리가 없다면 기도의 응답을 기대할 수 없다


2. 섭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섭리의 교리는 불가해한 교리다

(2) 성경은 하나님이 만물을 통제하고 계신다고 말한다

(3) 성경의 직접적 진술, 예언, 기도, 기적을 통해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4) 섭리의 세 가지 요소

(5) 섭리의 목적

(6) 섭리가 작용하는 영역

(7) 기적


3. 사람들이 섭리 교리에 대해 갖는 어려움

(1) 특별 섭리를 인정할 수 없다

(2) 하나님의 섭리와 죄는 어떤 관계인가


4. 섭리 교리의 두 가지 권면

(1) 섭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것임을 알라

(2) 어떤 사건을 특별 섭리라고 주장할 때는 신중히 생각하라


- 섭리는 창조주가 자신의 모든 피조물을 유지하시는 신적 에너지의 끊임없는 실행으로서,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 안에서 작용하고 있고, 모든 것을 정해진목적을 향해 가도록 인도한다.


14. 사람의 창조

1. 사람 창조의 독특성

(1) 삼위 하나님의 협의가 있었다

(2)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3) 사람의 구성 요소는 독특하다

(4) 사람에게는 높은 지위가 부여되었다


2. 진화론

(1) 성경은 사람의 차아조 전에 삼위의 협의가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진화를 부정한다

(2) 성경은 사람이 다른 생물이 아닌 흙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말함으로써 진화를 부정한다

(3) 성경은 사람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본질적인특징들이 있다고 말한다

(4) 성경의 타락 교리는 진화론의 가르침과 정반대다

(5) 유신론적 진화론 역시 비성경적이다

(6) 성경은 인류가 하나라고 말한다


3.사람의 구성적 본질

(1) 이분설과 삼분설

(2) 육체와 영혼의 관계

(3) 영혼의 기원


- 사람은 동물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사람에게는 자의식과 도덕적 자유, 추상적 사고를 할 능력, 종교를 갖고 예배할 능력이 있다.


- 진화의 과정은 항상 상향적이라고 말한다, 원시적, 단순한 것에서 고도로 조직화되고 복잡한 것으로 완벽함을 향하여 끝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 진화론은 사람이 짐승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출발했으나 점점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 발전하여 결국에는 완벽함에 이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정반대로 말한다. 성경은 사람이 꼭대기에서 출발한 후 거기에서 떨어졌다고 가르친다. (타락교리)


15.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1. 이 문제를 고찰해야 하는 이유

(1) 성경이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말한다

(2)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교리가 있어야만 설명할 수 있는 다른 교리들이 있다

(3)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게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접촉점이다


2.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일반적 원칙

(1)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존재다

(2) 하나님의 형상은 타락 이후에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3) 중생은 타락 이전 상태로의 회복이 아니다

(4) 최초의 사람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형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같지 않다

(5) 하나님 형상의 두 가지 요소


3. 사람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의 구체적 모습

(1) 본질적 자아의 불가시성과 불멸성

(2) 영혼의 활동들

(3) 지적, 도덕적 완전함

(4) 몸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

(5)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과 통치권

(6) 하나님 형상의 본질적 요소와 비본질적 요소


4. 사람의 원래 상태

(1) 아딤의 상태

(2) 최초의 사람에게 주어진 두 가지 가능성



16.타락

1.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들

(1) 이원론

(2) 진화론적 설명

(3) 기타 이론들


2. 사람과 세상의 현 상태에 대한 창세가 3장의 설명

(1) 창세기 3장의 역사성

(2) 타락의 원인과 단계

(3) 타락의 결과


- 이원론(dualism) 기독교 시대 이전까지 올라가는 오래 된 이론, 인생에는 선의 원리와 악의 원리라고 하는 두 개의 똑같이 중대한 원리들이 있다고 말함.


17. 아담의 후손과 원죄

1. 타락의 즉각적 결과 (16장에서 계속)


2. 타락이 아담의 후손들에게 끼친 영향-죄의 보편성

(1) 죄의 보편성에 대한 잘못된 설명들

(2) 죄의 보편성을 확증하는 성경 구절들

(3) 죄란 무엇인가

(4) 죄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이론

(5) 원죄의 교리


18. 원오명

1. 원오염의 의미

(1) 원오염이란 원의를 잃어버린 것을 말한다

(2) 원오염에 대해 주의해야 할 사항

2 오염의 표현

(1) 전적 부패 (2) 전적 무능



19. 구속:하나남의 영원한 계획

1. 지금까지의 결론

2.구속 교리의 개관

(1) 구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2) 구속은 전적으로 은혜로 말미암는다

(3) 구속은 창세전에 계획되었다

(4) 구속은 삼위 하나님의 협의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다

(5) 구속은 확실하고 완벽한 계획이다

(6) 구속의 계획은 반드시 성취된다

(7) 구속 계획은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에게 적용된다

(8) 구속 계획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9) 구속의 계획은 언약을 통해 인류에게 계시되었다



20. 구약에 나타난 은혜의 언약

1. 언약

(1) 하나님과 사람이 맺은 언약의 독특성

(20 은혜의 언약


2. 구약에 계시된 은혜의 언약

(1) 원복음

(*창세기 3장 15절_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 뱀은 하와를 미혹시켜, 친밀한 사이가 되었고 여자는 마귀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마귀가 아닌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하심)

- 하나님은 원수와 대항해서 싸우는 이 싸움에서 사람 편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 하심. (후손에게도)

- 하나님이 그 싸움은 여자와 그녀의 후손과 마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서도 일어난다고 말씀하심, 인류는 여기에서 두 종류로 나뉩니다.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했으며, 마귀의 자녀이자 후손임. 그래서 인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후손, 마귀의 후손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들 사이에 싸움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창세기 3장 15절에 나와 있다.

- 하나님과 하나님의 길이 승리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져있다.


(2) 노아와 맺은 언약

- 물로써 모든 땅과 모든 생물을 멸하는 일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약속

- 은혜의 언약은 창세기 3장 15절에 어렴풋이 나타나 있음. 이 때의 언약과 노아와 맺은 언약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단지 몇 가지 보충적인 약속과 명령을 제시, 궁극적인 의미에서 볼 때 노아와 맺은 언약은 새로운 언약이 아니라 일시적인 법령이었음,특별 은혜와 구별하여 일반 은혜라고 부름.


(3)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 여기서 처음으로, 어느 정도 분명하게 일종의 교회가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구별되기 시작.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 만들어지는 구별.

-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이 창세기 3장 15절에 어렴풋이 보여주셨던 것을 명백하게 표현한, 위대하고 분명한 최초의 약속



(4)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

- 민족적 언약, 이 떄부터 교회와 민족은 하나가 되었다.

- 행위 언약을 맺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심지어 낙원에서도 실패했던 사람에게, 어떤 일들을 행하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입니까? 율법을 주신 것은 행위 언약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였음, -

- 이 율법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보여 주고,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죄사하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 율법의 수여와 함께 모세를 통해 맺은 언약은 결코 은혜의 언약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첫번째 목적 : 죄의식을 증가시키기 위해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롬5:20)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

두번째 목적 :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3:24


- 율법의 요점 : 일종의 선생, 가정 교사의 역할을 하여 우리를 인도하기 위함,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줌, 율법 자체가 구원의 수단은 아님



21. 신약에 나타난 은혜의 언약

1 은혜 언약의 세 새대

(1) 은혜 언약이 옛 세대와 새 세대에 동일하다는 증거

(2) 옛 세대와 세 세대의 차이


2. 은혜 언약의 당사자

(1) 우리의 대표로 언약에 참가하신 성자

(2) 언약의 당사자에게 요구되는 조건


-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성경의 다른 부분들은 이 여자의 후손이 다름 아닌 주 예수이심을 증거합니다.

요한복음 5:39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6절 :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한복음 8:56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22. 주 예수 그리스도

1.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중요성

(1) 기독교 신앙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신앙이다

(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진술

(1)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과 약속의 성취

(2)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성경적 이유


3. 성육신 교리의 개요


23. 성육신

1. 성육신 교리의 요점

1) 성육신 교리는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2) 성육신은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가 육신이 되신 것이다

 :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삼위일체는 믿는 우리로서는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께서 육신이 되시어 사람으로 나타나셨다고 말해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가 취하신 것은 진정한 육체였다ㅜ

4) 성육신에 의해 새로운 인격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 인간의 본성을 입으신 것이다

5) 성육신에 의해 성자의 인격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6) 성육신은 성자가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7) 성육신에서 성자는 모양이 아닌 진정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8) 성육신에서 성자는 완전한 인성을 취하셨다

9)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취한 것이다


2 동정녀 탄생

1) 동정녀 탄생 교리에 접근하는 자세

2) 동정녀 탄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3) 동정녀 탄생 교리의 의미 


 

24.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증거

1.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증거

1)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여진 신적 이름들

2)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려진 신적 속성들

3)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직무들

4) 여호와께서 사용한 용어들을 예수님께도 적용함

5)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이 연결되는 방식

6) 예수 그리스도께 신적 예배가 돌려짐

7) 주님 자신의 자의식과 신성에 대한 주장들

8) 동정녀 탄생과 부활


2.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증거

1) 동정녀 탄생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

3) 육체적 본성을 지니심

4) 성장과 발달을 경험하심

5) 지상에서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으셨음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사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3:32)

6) 육체적 제한을 겪으심

7) 시험을 받으심

8) 기도하셔야 했음

9) 성령으로부터 능력을 받으셔야 했음

10) 하나님을 '내 하나님' 이라고 부르심

11) 예수님이 모든 면에서 사람이셨다는 성경의 주장들


3. 죄 없으신 참 사람 



-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여진 특별한 신적 이름들 

: 하나님의 아들 (40번) 

: 하나님의 독생자  

: 처음이요 마지막, 알파와 옴가 

: 거룩한 자 

: 주(the Lor) 

: 영광의 주 

: 하나님 (도마,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8) 

: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디도서 2:13) 


25. 신인:교리 

1. 성부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 

2. 신인 교리 

 1) 신인 교리에 대한 오류들

 2) 예수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지닌 한 인격이심

 3) 신성과 인성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3. 신인 교리의 신비

1) 신인 교리는 이성의 범주를 벗어난다

2) 신인 교리를 설명하는 유추들

3) 빌립보서 2장 5~8절을 통해 본 신인 교리

4) 신인 교리의 핵심

5) 신인 교리는 놀라운 구원의 신비다 



26. 선지자이신 그리스도 

1.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1)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화해와 회복 사역

2)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무 

 : 선지자, 제사장, 왕 


2.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1) 선지자의 역할

2)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에 대한 성경의 증거

3) 주님이 선지자적 기능을 수행하시는 방법

4) 이 교리의 의의 



27.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1. 제사장의 직무

1) 교리의 중요성

2) 성경이 말하는 제사장의 직무 - 화목과 중재

3) 예물과 제사의 기능


2.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1) 구약의 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

2) 예수의 대제사장 되심의 증거

3) 백성을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



28. 속죄

1.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

1) 십자가 사건의 중요성

2) 십자가와 관련된 잘못된 개념들에 대한 반론

3) 십자가와 구원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


- 복음서의 기자들이 성령의 인도와 지도 아래 복음서를 기록할 때, 그들은 자기들이 강조하는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상기시킨 것처럼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잇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 주님을 죽이기로 모의한 관원들은 '명절(명절기간)에는 하지 말자' 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주님을 성금요일에 못 박지 않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주님은 바로 그 날에 못박히셨습니다. 명절 기간에는 아무도 사형에 처하지 않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었습니다. 헤롯 왕은 베드로를 체포햇지만 그 날이 '무교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죽으실 것을 아셨을 뿐만 아니라 그 정확한 시점까지 아시고 사흘 전에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29. 대속

1. 대속적, 형벌적 속죄의 증거

1) 주님이 하신 사역의 의미를 보여 주는 구약의 제사

2)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신약 성경의 가르침

3) 주님의 사역을 묘사하는 단어들

4) 대속적 죽음의 의미를 강조하는 신약 성경의 용어들

5)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이 강조됨

6)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대속과 형벌적 속죄를 통해 얻어짐

7) 주님의 죽음을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는 사실 


- 성경의 가르침은 속죄에서 대속적 요소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강조.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의 대리인이 되어, 백성이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한 형벌을 대리적으로 받으셨다고 함 (성경적 속죄 교리에 대한 개혁주의적 견해),

두 가지 특징 1) 에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리자로서 행하셨음을 강조 2) 형벌적 측면, 


- 구약의 제사장이 바치던 제사의 기능

 1) 번죄와 속죄제의 목적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 

2) 이 화목은 죄책의 속죄에 의해 확보되었다는 것. 

3) 속죄가 희생제물이 대리 형벌을 받음으로써 유효하게 되었다는 것  

4) 속죄제와 번제의 효과는 범죄자가 용서받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 화목 제물 : 노여움을 달래는 행위, 노여움을 달래는 수단 


30. 속죄의 필요성 

1. 대속적, 형벌적 속죄의 증거 

1) 십자가의 죽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음을 강조하는 성경 구절들

2) 보조적 논증들

3) 반론과 답변들


2. 속죄교리의 핵심

1) 예수님의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

2)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에게 전가된 의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어떻게 하나님이 동시에 의로우면서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실 수 있습니까?....순결하셔서 악과 죄는 바라보실 수도 없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를 용서하시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영원토록 의로우신 성품을 유지하실 수 있습니까?  

사도가 제시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에서 자기 아들에게 하신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을 보이시는 방법으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여기에 대해서는 오직 한 가지 설명만 가능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안에서 죄를 벌하셨기 때문에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전히 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죄에 대하여 행하겠다고 하신 그대로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대속자에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고, "예수 믿는" 우리를 의롭다 하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논지는 이것이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이 본문만 있다 하더라도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성품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고, 온 세상 사람들 뿐 아니라 하늘의 통치자들과 권세들 앞에서, 심지어는 마귀와 모든 지옥의 거주자들 앞에서까지 정당함을 입 증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영원토록 공의로우심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예수 믿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심오한 말씀입니까? 



 -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교리를 믿는다면, 죄는 분명 벌을 받아야 합니다.형벌적 요소가 개입할 수밖에 없고, 대속의 필요성이 뒤따라옵니다. 또난 하나님의 율법의 엄위함과 불변성에 대한 논증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슴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 충분하다고 말하는 논증도 있습니다...'우리는 대속이 없이도, 아무런 처벌이 없이도 서로를 용서해 준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그와 같이 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큰 사랑을 갖고 계신 하나님은 훨씬 더 쉽게 용서하실 수 있음이 분명하다."....만일 하나님이 오직 사랑이시기만 한다면 이 논증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빛이시고,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의로우십니다.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의 경우에 비추어 하나님을 판단하는 그런 논증보다 더 큰 오류는 없습니다....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와 같은 주장을 합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사살이라면 하나님에게는 얼마나 더 그럴까라고 그들은 말합니다....실상 우리는 죄 가운데 있으며 우리의 모든 생각은 잘못되어 있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사고에 비추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참으로 딱하게 그지없는 상황입니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상적이고, 엉성하고, 불공정하고, 불의한 개념을 영원하신 하나님께 적용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의험한 시도입니다. 


31. 승리자 그리스도

1. 십자가에서 이루신 승리

1) 이 가르침의 배경

2) 사탄을 정복하신 주님

3) 죽음을 정복하신 주님

4) 죄를 정복하신 주님


2. 주님의 사역의 진정한 결과

1)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일어난 변화

2) 천국에 일어난 변화


3. 주님의 등동적 사역의 의의


32. 새 언약의 복들

1) 피 흘림을 통해 비준된 새 언약

2) 새 언약의 복들



-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셨는지 의심하는 것도 겸손의 표시나 성도다움의 표시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이며 믿음의 부족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죄가 사해졌음을 확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만큼 감수성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노력은 결코 다시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죄가 사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 그리고 복음의 경이로움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확신합니까? 당신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으며,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이시며,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고 거룩한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니까?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만일 지금까지 그것을 알지 못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하십시오. 당신의 불신과 무지를 고백하되 진리를 믿고 받아들여 진리대로 행하십시오. 믿음 가운데 주께 나아가십시오. 느낌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말씀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느낌은 따라올 것입니다. 마귀가 여러분에게서 기쁨과 확신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 부여한 자리에 굳게 서십시오. 하나님께 나아가 이 모든 일에 감사드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일에 대해 믿음으로 감사드리면 감사드릴수록 더 많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며, 그 안에 나타난 사랑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33. 왕이신 그리스도

1. 십자가가 주는 일반적 복들

1) 옛 세대의 사라들, 불신자들에게 미치는 십자가의 복

2) 천사들에게 주어지는 십자가의 복

3) 십자가로 인해 일어난 우주적 결과


2.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

1) 성육신 하신 주님이 받은 메시아적 영광

2)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신 주님

3) 교회에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주님


3. 왕이신 그리스도

1) 중보적 왕권

2) 그리스도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