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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돌아가야 할 곳에 돌아가기 위해, 되찾아야 할 것을 찾아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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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이 예민했던 10대와 20대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작가 중 하나인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의 작품에 대한 모든 호기심이 사라져 버렸다. 앞으로 다시는 읽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작품이 좋냐, 나쁘냐를 떠나서 더이상 나에게는 이런 식의 글들이 필요치가 않다. 

그의 상황 묘사나 심리 묘사는 아직도 좋다.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그 느낌을 글로 묘사하는 문장들을 발견할 때마다 느끼던 쾌감이 이 책에도 여전히 많았다.

나에게 하루키는 이제 딱 그 정도의 의미다. 



방향 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쓰쿠루는 같은 장소를 그저 빙글빙글 맴돌았다. 불현듯 정신을 차려 보면 아까와 같은 장소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사고는 이윽도 대가리의 홈이 문드러진 나사처럼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실제로 죽음 앞에 직면했으니까. 나뭇 가지에 달라붙은 벌레의 허물처럼 조금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휙 어딘가로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상태로 겨우 이 세상에 매달려 살아왔으니까. 


(하이디는) 목덜미에 칼로 그은 듯한 4센티미터 정도의 깊고 오래된 상흔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의 얌전한 몸가짐에 신비로운 악센트를 덧붙였다.


"간단한 일이 아니죠. 맞는 말이예요. 그렇지만 내 마음은 정해져 있어요. 나는 늘 자유롭고 싶어요. 요리하는 건 좋아하지만 직업으로서 부엌에 틀어박히고 싶지는 않아요. 그랬다가는 곧 누군가를 증오하게 될 테니까요." 

"누군가를?"

"요리사는 웨이터를 증오하고, 그 둘은 손님을 증오한다. 아널드 웨스커(Arnold Wesker)의 [부엌]이라는 희곡에 나오는 말이에요.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를 증오하게 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그런 삶은 살기 싫어요."


창의력이란 사려 깊은 모방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현실주의자 볼테르가 한 말이에요. 


예를 들어 어금니 하나가 욱신거리기만 해도, 어깨가 심하게 결리기만 해도, 피아노는 제대로 칠 수가 없어. 사실이ㅑ. 난 실제로 그런 걸 체험했으니까. 고작 충치 하나 때문에, 뭉친 어꺠 근육 때문에 모든 아름다운 비전과 울림이 휙 사라져 버려. 사람의 육체란 이렇게 나약하고 물러. 육체란 놈은 무섭게 복잡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고, 사소한 것에도 자주 상처를 입어. 그리고 한 번 고장이 나 버리면 대부분 회복이 어려워.-중략- 그렇게 한 치 앞도 모르는 허약한 기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재능에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겠어?


이윽고 키 큰 사내가 쇼룸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몸집도 컸다. 그러나 그 몸집에 비해 움직임이 기민했다. 보폭도 넓고, 자신이 비교적 서둘러 공간을 이동한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알리는 움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