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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어려운 하나님


더운 여름날에 혓바닥을 내밀며 더위와 나름의 전쟁을 하고 있는 강아지를 지켜보는 감정에는 '안쓰러움'보다 '귀여움'이 더 크다.

 

1. 영화 '미스트' 의  한치 앞도 볼 수 없게 된 그 마을처럼 나의 미래가 그래 보였고, 나의 내일이 그래 보였고, 바로 나의 한 시간 뒤가 그러하게 느껴졌다. 너무 끔찍해서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엔딩장면이 기억 났다. 한 치 앞만 더 볼 수 있었다면 그런 끔찍한 일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천국같던 구원의 희망이 불과 몇 백미터 앞에 있었지만 안개는 그들에게 그런 희망을 예상할 수 조차 없게 만들었었고 그들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었다. 이렇듯 희망이라는 것의 적절한 타이밍은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시점에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발 끝에 이르르는 것이다. 


2. 잠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운동을 하다 팔을 다쳤다. 다른 몇몇 부위들에 고통이 찾아 왔다. 소리를 지르거나 죽겠다는 식의 아픔은 아니였다.(난 이러한 육체의 고통은 느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삶의 순간순간에 잊을만하면 적절한 고통으로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는 정도였다. 꽤나 모나고 큰 돌이 신발 안에 들어와 있는데 이 신발을 도저히 벗을 수 없는 상황 속에 오래 있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였다.  


3. 상한 마음과 작은 육체의 아픔과 함께 몇 일을 살면서 나도 모르게 '욥'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결론은 하나님께로 귀결된다. 하나님은 날 창조하시고 잊어버리시는 무책임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의 계획과 뜻을 알게 해달라고 몸부림쳤지만 하나님은 욥에게 그러했던 것 처럼 나에게도 그러하셨다. "내가 세상을 창조할 때 네가 있었느냐?" 현실 세계에서의 '욥'같은 사람들은 다들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런 고통 속에서 다시 두 배의 축복을 받은 현실의 '욥'들에게 그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 묻고 싶었다. 


4. '욥'이 모든 고통을 견뎌낸 후에 즉,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아가리라'라고 고백한 후에 정말 정금같이 되어 두 배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에 집중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통후에는 자연적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인가? 세상을 바라보면 그렇지 않은 일도 무수히 많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시선은 '천국'으로 향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이 세상은 한 없이 고통스러운 곳이니 그저 주님께 순종하며 살다가 천국으로 가서 기쁨을 누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현실 세계에세도 충분히 주님과 동행하며, 관계하며, 나름의 충만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어떠한 이에게는 충만하고평안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허락하시고 어떤 이에게는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우며 주님께 절규할 수 밖에 없는 삶을 허락하실까?


5. 과연 그게 '죄'만의 문제일까?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죄, 야곱이 아버지를 속인 죄, 가인이 아벨을 죽인 죄와 같은 죄가 아니라,하나님께서 멀어지는 바로 그 죄) 하나님은 우리의 인과응보 법칙 아래 계신 분은 아니시다. 도대체 뭘까? 답이 없는 수많은 고민들을 하며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다. "아버지,사랑합니다.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난 아버지 음성도 듣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아버지가 안아주신다는 그런 느낌도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성경책에서 읽고, 설교에서 듣고, 책에서 읽게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서운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버지와의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은데 저의 문제가 뭘까요? 사람들은 그럽니다. 회개를 해야 한다. 집중해야 한다. 전심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등등등..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데 과연 제가 노력한다고 들어지는 것이고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들어지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면 제가 어떤 상태에 있던 듣겠지요. 야곱은 자다가 하나님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그럼 이제 내 안에 있는 성령께서 날 위해 대신 간구하고, 또 보혜사 성령께서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고하셨습니다. 이 것도 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그렇다면 제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인건가요. 결론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실 것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말씀하실 거라는 믿음입니다. 


6. 너무 어려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라고 진작에 알았으면 애초에 믿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끝없는 답 없는 의문에 머리가 빠지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기도드릴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런 저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보면) 비정상적인 크리스천들이 있어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장 감사한 것...하나님이 아시고 제가 아는 바로 그 것.콩당이.감사합니다. 



다시 강아지 얘기로 돌아가보면, 

강아지는 지쳐있는 모습이 귀엽기라도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힘내라! 하나님이 은혜롭게 주신 이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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